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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인문학산책] 영원회귀와 동지

바람아님 2019. 12. 22. 09:21

세계일보 2019.12.20. 22:55


생로병사서 누가 자유로울수 있나 /
동아시아 전통선 한 해는 세 번 시작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는 않는데, 먹으면 죽는 것이 나이라더니 한 살 더 먹는 일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을까. 여기저기서 뜻밖의 부음들이 들려온다. 얼마 전엔 심리철학계의 세계적 스타인 김재권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몸과 마음이 동일하다는 심신동일론이 팽배하던 시절에, 선생은 섬세한 논리로 몸 없는 마음은 있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마음과 몸이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이론을 전개해 미국의 심리철학계를 사로잡았던 인물이다.

         
그에 따르면 마음은 몸에 수반된다. 몸에 올라타 나타나는 마음은, 물감으로 이루어진 고흐의 그림이 물감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미적 세계를 창조하는 것처럼, 몸과는 다른 독자적인 세계를 열어간다. 수반론은 몸으로 환원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을 확보해 주지만,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는 면에서 물리주의 전통에 있다. 수반론의 창시자인 그는 어디로 갔을까. 그의 몸이 떠났으니 거기 수반돼 있던 마음도 떠나 완전히 사라져간 것일까.
이주향 수원대 교수 철학
인연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지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김우중 회장도 떠나고, 삶의 품격이 있었다고 회자된 구자경 회장도 떠났다. 한때 빛났던 존재들이 그 빛을 잃고 사라져 가는 것을 볼 때마다 태어난 모든 생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가 진짜 무서운 진리라 느끼게 된다.


젊음이 떠나고, 사랑이 떠나고, 일이 떠나고, 기억력이 떠나고, 자신감이 떠나고, 익숙했던 사람이 떠나고, 마침내 목숨이 떠나는 이치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사실 가는 것이 없이 오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오는 것에 대한 설렘보다 가는 것에 대한 허전함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가는 삶의 순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가고 있는 것을 가지 말라고 붙들며, 집착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집착하며 집착의 이면인 고통의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집착을 털어내고 보면 가고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이치다. ‘파이돈’에서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살았으니 죽는 거라고. 자기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는지. 아내 크산티페가 통곡하자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누가 저 여인을 위로해 주게. 나는 내 마지막을 고요하게 맞이하고 싶네.”


한 제자의 부축을 받으며 크산티페가 나가자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계속된다. 그는 제자들을 향해 죽음의 원인이 삶이라면 삶의 원인은 죽음이 아니겠냐고 조심스레 되묻는다. 그런 소크라테스를 보면서 그야말로 영원회귀를 믿은 현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찾아든다. 집착을 끊어낸 현자의 진면목은 낯설면서도 친근하다.


살았기 때문에 죽는 거고, 죽기 때문에 사는 거라면 삶과 죽음은, 기쁨과 슬픔은, 밤과 낮은 서로를 통과하며 돌고 돈다. 돌고 도니 시작점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곳이 출발점이 될 수 있고, 모든 곳이 도착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사람들이 돌고 도는 세상에 이름을 주고 문화 입히면서 시작점을 만든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한 해는 세 번 시작한다. 태음력을 쓰는 전통에서는 한 해가 음력 1월1일 설날에 시작하고, 24절기를 중시하는 전통에서는 양력 2월4일 입춘이 시작이다. 첫 번째 시작은 바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 동지다. 동지는 이 땅 위에서 해가 가장 짧게 사는 날, 해의 죽음이고, 동시에 새해의 시작이다. 헌 해가 죽었으니 새해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해가 가장 짧은 동지에 일양(一陽)이 싹튼다고 했다.


헌 해의 죽음을 통과해 나오는 새해는 죽어서도 죽지 않고 삶으로 돌아와 영원회귀하는 순환의 신비, 생명의 신비를 보여준다. 아마 우리가 ‘천개의 바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개념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촉으로는 알고 있는 그 영원회귀 때문은 아닐까.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습니다. 나는 천 개의 바람이 되고,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눈이 되고, 곡식을 영글게 하는 햇살이 되고, 가을의 보슬비가 됩니다. 내 무덤가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