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한 해를 정리하는 연례행사로 각 분야에서 10대 뉴스를 선정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올해 일어난 큰 이슈 가운데 하나는 고(故) 수화 김환기 화백의 '우주(Universe 5-Ⅳ-17 #200)'가 지난달 23일 홍콩 컨벤션전시센터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된 것이다. 수수료를 포함하면 153억5000만원이다. 국내 미술시장의 경기는 그 어느 해보다도 안 좋았지만 '우주'는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Universe 5-Ⅳ-17 #200'은 뉴욕에 정착한 지 8년 만인 1971년 9월 맨해튼의 메이저 화랑인 포인덱스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게 된 김 화백이 작가 인생의 마지막 승부라고 생각하고 작업한 대형 점화 9점 가운데 한 점이다. 254㎝×254㎝의 대작으로 김 화백의 전작 가운데 유일한 두폭화다. 김 화백의 친구이자 후원자, 주치의였던 김마태 박사 부부가 포인덱스터 갤러리 전시회에서 이 작품을 구입해 소장했고 김환기미술관에서 위탁 관리하다 이번에 경매에 나온 것이다. 피부와 종교, 역사와 문화가 달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우주의 언어라는 초자연적인 주제를 순수하고 서정적인 조형성으로 완성한 작품은 역사성이나 예술성 측면에서 '132억원'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뉴욕병원에서 디스크 수술을 받고 회복 중 침대에서 떨어져 의식불명이 된 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김 화백은 저 세상에서 이 소식을 들었을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이란 것을 좀 해본다. 단순히 액수가 크다고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고 이것이 이 시점에,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 같아서다.
김 화백은 생계형 전업 작가였다. 전남 신안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화가가 되기로 한 이후 늘 생활고에 시달린 김 화백은 뉴욕에 와서는 고질인 디스크로 고생하면서도 의료보험료를 낼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생각도 못 했다고 한다. 마지막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주치의 김 박사가 보증인을 자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작품이 132억원에 팔리고 한국 최고가 작품 리스트 1위부터 8위를 석권한들 김 화백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 화백의 '우주'가 곤궁한 전업 예술가들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그 의미가 정녕 없는 것일까. 반대로 너무나 많다. 오늘을 사는 작가들에게 김 화백의 '우주'가 한국 미술계의 잠재력을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메시지가 된 것이 확실하다. 많은 작가가 국제 무대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활동하려면 그만큼 작가층이 탄탄해야 하고, 생계에 대한 고민 없이 지속적으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작가가 많을수록 그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미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모두 마찬가지다. 선순환 구조의 틀을 구성하는 기본 개념은 문화예술이 모든 계층과 연령의 차별 없이 고르게 누릴 수 있는 공공재라는 인식이다. 공공재로서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후에야 문화예술이 꽃필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선순환 구조의 출발은 창작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이다. 예술인 복지제도가 마련돼 있다고 하지만 창작지원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채우는 것이 더 어려워 포기하는 예술인이 부지기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인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기준 전업 예술인은 전체의 57.4%였다.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예술인이 72.7%에 이른다. 열에 여덟은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는 마당에 국제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창의적 작품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그다음은 사람들이 그 작품에 최대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교육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이 예술을 접할 기회를 늘려주는 것이다. 직접 뭔가를 해보고 눈으로 보면서 어려서부터 예술을 향유하는 능력을 키우고 창조력을 함양하는 것을 통해 예술가의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예술, 문화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다.
전기 작가 이충렬이 최근 출간한 '천년의 화가-김홍도'에서 단원 김홍도의 마지막에 대한 부분이 내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1805년 음력 12월30일 전라도관찰사 심상규가 한양에 있는 옛 벗 예조판서 서용보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화사 김홍도가 굶주리고 병들어 먹을 것을 위해서 여기(전주)에 왔습니다. 이 사람은 이 시대에 재주가 훌륭한 사람인데 그 곤궁함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인재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예나 지금이나 같은 탄식이 반복돼야 하나. 2020년은 예술인들이 마음 놓고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그런 한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함혜리 언론인/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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