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1.01. 03:08
"김정은이 ICBM을 쏜다면.. 트럼프, 발사대 공격 가능성
北이 보복으로 서울 공격할 수도
중국, 방지 역할 무엇보다도 중요.. 한국은 더 적극적 해결책 찾아야"
"韓·日 '대포엔 대포로' 전략인 듯
양국간 아무리 과거사가 있더라도 돌출세력 中이 있다는걸 직시하고 서로 협력해 더 많은 이익 누려야"
신흥 강국과 기존 패권국의 충돌을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책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12월 12일 도쿄의 한 학술행사에서 "2차 한국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북한의 대립이 2차 한국전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50% 이상은 아니지만 매우 높다"고 했다. 전제를 깔긴 했지만 안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한국전쟁 가능성과 관련해 높은 확률의 숫자를 꺼낸 것만으로 행사장이 술렁였다.
앨리슨 교수는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2017년)'에서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라는 개념을 제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중국이 미국과 패권(覇權)을 놓고 충돌하는 것은 필연이라며, 고대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그리스의 신흥 강국 아테네와 기존 강국 스파르타 간의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분석한 것에 비교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썼다.
앨리슨 교수에게 '2차 한국전쟁' 발언의 배경을 듣기 위해 지난 12월 21일 새벽 전화로 인터뷰했다. 미국 보스턴 시각 금요일 오후, 크리스마스·신년 휴가를 앞두고 그가 하버드 연구실을 떠나기 한 시간 전이었다.
―"2차 한국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앞으로 2~3개월 한반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러나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윈스턴 처칠은 '더 길게 되돌아볼수록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고 했다. 1914년 당시 1차 세계대전 발발을 예상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하지만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된 사건이 결국 세계대전을 낳지 않았나. 이 사례는 '아주 큰 결과도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이것이 내가 한반도 상황을 보는 큰 그림이다."
―한반도 긴장 상황에서 미·중 충돌의 불씨가 지펴질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물론이다. 미·중 직접 충돌로 양국 간에 3차 대전이 일어나기는 매우 어렵겠지만, 제3자에서 문제가 터질 수 있다. 대만·홍콩의 독립 시도, 일본·중국 간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분쟁 등을 들 수 있는데, 가장 위험한 게 북한 핵을 둘러싼 한반도 긴장이다."
―어떤 식으로 방아쇠가 당겨질 수 있나.
"내가 2차 한국전쟁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로 또 시간이 흘렀지만, 평양·워싱턴 간에 '노이즈(잡음)'만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그 사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서울을 다녀갔지만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았고, 미국에 적대적인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이것이 2차 한국전쟁 가능성의 1단계이다."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2단계는 김정은의 신년연설이 될 것이다. 김정은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에 적대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중단했던 2017년 11월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3단계는 김정은이 실제로 ICBM을 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트럼프가 발사대를 실제로 공격할 가능성이 꽤 크다고 본다. 미국이 공격하면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 보복으로 서울을 포격할 가능성이 있다. 4단계는 한국과 미국이 서울에 대한 2차 공격을 막기 위해 북한 공격시설을 파괴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가면 2차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혹은 극도의 대치 상황에서 어떤 우발적 사건이 전쟁으로 확대될 위험도 있다."
―4단계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큰가.
"우선 '50% 이상은 아니지만 매우 높은 가능성'이라는 내 말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싶다. '2차 한국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하려던 게 절대 아니다. 초점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맞춰져 있다. 국가안보 전문가들은 설령 가능성이 작더라도 위험을 경고해야 한다. 어떤 한국인들은 내 말이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특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기에 말이다. 하지만 이럴 때가 가장 위험할 수 있다. 위험을 막으려면 우선 중국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중국의 이익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쪽에 자제를 요구하는 식의 원칙론은 이제 됐다. 한국 정부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재앙은 남한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미국도 이제는 북핵 문제를 끝낼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원에서 탄핵 소추를 당하는 등 미국 내정이 혼란스럽다.
"민주당의 탄핵 시도를 지켜봤는데, 나는 이것이 결국 트럼프 재선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 생각한다. 트럼프의 행정 능력이나 내러티브(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능력)가 민주당의 그것을 이길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탄핵 시도로 공화당, 비당파층의 트럼프 지지도가 올라갔다. 민주당은 얻은 게 없다."
―중국 정치 시스템이 미국보다 효과적인 부분도 있어 보인다.
"시진핑 정부가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즉각 행동으로 옮길 수 있으니까. 중국은 미국 공화·민주당뿐 아니라, 보리스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를 어떻게 풀어가는지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이런 혼란·변화를 미국과의 싸움에 이용하려 들 것이다. 반면 미국 시스템은 혼돈(chaotic)이다. 트럼프는 이렇게, 의회 인사는 저렇게 말한다. 부분적으로는 원래 그렇게 설계된 것이다. 헌법에 따라 행정·입법·사법 3권 분립이 된 것이니까."
―중남미에서 시위가 폭발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의견도 있는데.
"민주주의의 위기는 매우 심각한, 진짜 주제다. 반정부 시위는 중남미뿐이 아니다. 프랑스·레바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다. 민주주의 정치의 대혼란이다. 그러나 나는 '민주주의는 최악의 체제다. 예전에 시도해본 다른 체제를 모두 제외한다면'이라는 처칠의 격언을 사랑한다. '대안들이 더 나쁘더라'는 것이다."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한국인이 과거사 문제에 느끼는 감정을 전적으로 이해한다. 위안부 문제에 잘못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본도 전쟁이 끝난 뒤 한국에 많은 것을 했다. 정부가 범죄를 공식 인정하고 사과한 사실도 있다. 해결을 위해 행동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대포에는 대포로'라는 전략인 것 같다. 이면에 국내 정치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양국 간에 아무리 과거사가 있더라도 가장 돌출하고 있는 세력(중국)과 이웃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의 이익은 한국·일본의 이익과 충돌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협력함으로써 양국 모두 이익과 자유를 더 많이 누리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팔순(1940년생)인데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도쿄 행사 직후 베이징에서 5일을 보냈다. 중국 정부 고위인사들과 미·중 관계, 북핵 위협을 얘기했다. 도쿄에 가기 전엔 헨리 키신저와 주말을 보냈다. 키신저는 50년 전 내 지도교수였지만 이젠 동료이자 친구다. 그는 지난 11월 시진핑 주석과의 대담 내용을 들려줬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몇 분 뒤면 연구실 건물 전체가 문을 닫고 휴가에 들어간다. 해피 뉴 이어!"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예정된 전쟁' 펴냈던 美 국방·안보전문가
그레이엄 앨리슨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국방·안보 전문가이다. 1985~1987년 레이건 정부 국방장관 특보, 1993~1994년 클린턴 정부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하버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옥스퍼드대 정치·경제학 석사,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1989년 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장을 맡아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과 석학을 배출하는 최고 수준의 공공정책대학원으로 키웠다. 미·중 무역협상 중국 대표인 류허(劉鶴) 부총리도 케네디스쿨에서 수학했다. 1995~2017년 하버드대 벨퍼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앨리슨 교수를 국제사회에 다시 부각시킨 것은 2017년에 출간한 책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이다. 지난 500년간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국이 기존 패권국과 충돌한 16개 사례를 분석한 이 책은 현재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이해하고 전망하는 틀을 제시하고 있다. 앨리슨이 분석한 16개 사례 중 1·2차 세계대전과 중일전쟁 등 12개는 전쟁으로 끝났고, 미·소 냉전 등 4개의 사례만 전쟁을 모면했다.
그는 자신을 응용역사학자라고 소개한다. 주류 역사학자는 사건과 시대에서 출발해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한다면, 응용역사학자는 현재의 선택이나 곤경에서 출발해 관점을 제공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단서를 찾아내 실천 가능한 개입 방안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역사 기록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그가 하버드대 부교수이던 31세 때 쓴 '결정의 본질(Essence of Decision)'은 1962년 10월 16일부터 13일간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벼랑 끝에서 대치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루었다. 그는 서문에서 "수많은 사람들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질 가능성이 그처럼 높은 때는 없었다"며 "이 사건은 핵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핵심적 사실을 보여준다"고 썼다. 당시 미국의 대처 과정은 북한이 ICBM을 쏘려 할 때 트럼프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참고할 수도 있다.
[게시자 추가]
예정된 전쟁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 역자 정혜윤 |
책소개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이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가능성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한반도의 역할과 국제 정치의 역학관계, 외교적 딜레마 등에 관해 깊이 있는 관점을 펼쳐 보이는 한편, 제3차 세계전쟁을 막기 위한 조언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예정된 전쟁』. 지금 중국과 미국은 어느 쪽도 원치 않는 전쟁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신흥 세력이 지배 세력을 위협할 때 가장 치닫기 쉬운 결과가 바로 전쟁이라는 ‘투키디데스의 함정’ 때문이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고대 그리스를 폐허로 만들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신흥국 아테네의 부상에 대한 패권국 스파르타의 두려움 때문에 일어났다고 설명했고, 지난 500년 동안 이런 상황이 16번 발생해 그중 12번이 결국 전쟁으로 귀결됐다. 저자는 미국과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관계가 17번째 사례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최선의 렌즈인지를 설명한다.
지난 500년 동안의 역사적 기록을 살펴 전쟁이 일어나는 역학 관계의 기본 구조를 발견한 저자는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결국 구조적 긴장의 깊이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국의 이익, 과대한 공포, 자존심이라는 명예가 심하게 얽힐수록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고 말하며 지금 우리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고통스러운 단계들을 밟아나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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