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운명을 거스른 선택

바람아님 2020. 1. 9. 08:29
조선일보 2020.01.08. 03:07
박해림 2019 차범석희곡상 수상자

새해가 되면 당연하다는 듯 줄기차게 신년 운세를 보러 다닌다. 나는 사주팔자라든가 운명의 힘을 자주 믿었고, 알 수 없는 내 미래를 조금이라도 예측하길 바랐다. 한 해를 마감하면 기실 올해 운세는 거의 잊어버렸으며, 그중 일부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주 소소한 몇 가지 일이 억지로 끼워 맞춰졌고, 그 덕분에 스스로에게 과하게 동조해가며 신년이 되면 또다시 점집을 전전하는 절차를 겪었다.


새해 벽두부터 습관처럼 길거리를 지나다가 타로를 봐주는 간이 천막 안으로 무작정 들어가 운세를 봤다.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는 힘이 있으니 늘 가슴 뛰는 걸 선택하라'란 아주 평이하고 모범 답안 같은 대답을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에이, 돈 버렸네' 하고 나오면 될 것을 갑자기 뭔가 알 수 없는 화가 났다. 만약 내가 그 '운명'을 거스르는 힘이 있다면 갑자기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작은 회사에 들어가 조직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그 운명이라는 걸까. 아니면 글 쓰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빵집을 차리고 싶은 이 운명을 말하는 것일까. 사실 모든 질문이 다 부질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운명에 되묻고 또 되물었다. 나는 내가 피하려고 하는 그 힘까지 예상한 채로 그렇게 태어났어야 함이 옳다.

잡지사에서 일할 땐 기자였고, 공연을 할 땐 작가였고, 다 그만두고 빵집을 차리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나는 사장님이 될 테고, 강의를 나가면 선생님이 되는 프리랜서의 삶이다. 늘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삶을 살았고 앞으로도 어떻게 변할지 잘 모르겠다. 갑자기 주부가 될 수도 있겠지. 대부분의 선택은 그냥저냥 삶이 흘러갔을 뿐이다. 갑자기 이딴 운세를 보며 운명이니 팔자니 하는 지난날을 청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살자. 내가 뭐 피할 수나 있겠어. 더 이상 미신 따위를 믿지 않고 예측 불가능한 한 해를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가슴이 뛰었다.

엇! 잠깐. 뭐 그렇게 된다면 그것도 결국 맞는 운세 아닌가. 운명을 거스르는 가슴 뛰는 선택!

          

박해림 2019 차범석희곡상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