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해외여행 때 호스텔을 선호한다. 길 때는 민박, 일주일 단위는 호스텔이다. 복층 침대를 이용해 4명, 6명, 8명, 심지어 16명이 함께 투숙하는 콩나물 숙소다. 남녀 구분 없이 혼숙이다. 같은 방 친구들은 이름도 외우기 전에 바뀐다. 화장실·샤워실도 공용이다.
'대화와 서바이벌'은 콩나물 호스텔을 찾는 가장 큰 이유다. 호스텔의 주된 손님은 2030세대다. 함께 있다 보면 글로벌 청춘들의 생각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초면이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서바이벌 본능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항상 자기 점검을 하고, 규칙적인 생활에 들어간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청춘이다. 따라서 50대 필자의 취침 시각은 모두가 조용해지는 밤 12시. 코골이 방어용 귀마개, 악취에 대응할 향은 필수다. 아침 기상은 오전 6시. 화장실·샤워실 경쟁이 시작되기 전이다. 외출 시각은 오전 8시 이전. 여행(旅行)은 행(行)의 연속이다. 현지인 생활 리듬에 맞추는 '꽉 찬' 활동이다.
호스텔은 요리 시설을 갖추고 있다. 싱싱한 현지 재료를 활용한 요리는 여행의 백미(白眉)다. 최근 브뤼셀 호스텔에 머물렀다. 벨기에 장기 투숙은 처음이다. 언제나처럼 재료를 산 뒤 식당 주방으로 향했다. 조리용 불과 도구가 안 보인다. "2018년 봄부터 가스불을 중단했다. 북유럽 대부분 호스텔의 방침이다. 전자레인지 요리만 허용된다." 삶고 볶고 튀기는 것이 요리의 정도(正道)라고 알고 있었는데…. 디지털 기기로 무슨 요리가 가능한지 문신투성이 직원에게 반문했다. "3유로짜리 수프, 밥, 라면, 파스타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3분 내로 먹을 수 있다. 대부분은 인터넷으로 피자, 케밥을 주문한다. 요즘 화력 요리 하는 사람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로마, 파리, 마드리드 호스텔의 요리 군단 대부분이 필자와 비슷한 나이, 즉 '꼰대'란 것을 알게 됐다. 태블릿도 종(縱)이 아닌 횡(橫)으로 보고, 어릴 때 전자레인지가 없던 세대다. 갑자기 앙시앵레짐(구체제) 유물로 전락한 느낌이다. 이동형 개인용 열곤로가 떠올랐다. 눈치도 안 보고 호스텔 요리를 즐길 유일한 방법일지 모르겠다.
(조선일보 2020.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