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2.04.25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역사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소련의 몰락이라는 엄청난 사태를 미리 예측했던 학자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로도 이를 알 수
있다.
소련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1983년 타티아나 자스라브스키아라는 여성 학자가
노멘클라투라(특권계층)에 의한 잉여가치 착취 현상을 지적하며 소련 경제체제가 영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1984년에는
오가르코프라는 장군이 소련 경제는 군대가 필요로 하는 무기를 공급할 능력을 잃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의 CIA도 경제 문제가 소련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소련 체제가 실제 붕괴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소련
체제의 몰락을 주장한 사람이 없지는 않다. 일찍이 1969년에 안드레이 아말릭이 '1984년에 소련은 생존해 있을까?'라는 저서에서 소련이 외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붕괴되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련은 본질적으로 내부 요인에 의해 무너졌으므로 그의 주장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1978년에는 엘렌 카레르 당코스라는 프랑스의 여성 학자가 '제국의 폭발'이라는 책에서,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공화국들이 봉기하여 소련이라는
'제국'이 무너질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슬림 공화국이 아니라 발트 지역의 공화국들이 먼저 이탈했다.
소련 체제의 몰락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은 프랑스의 인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에마뉘엘 토드이다. 1965년에 소련 남성의 기대수명은 65세였는데
1980년에는 61세로 하락했다. 소련은 산업화된 국가 중 기대수명이 하락한 유일한 국가였다. 사망률이 상승하고 출생률은 크게 하락하여 인구
증가세가 둔화되었다. 1979년에 출생한 아이 수는 500만 명이었는데 같은 해 낙태 건수는 800만 건에 달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지표는
유아사망률이다. 1970년대 말에 소련의 유아사망률은 3%를 넘어섰다. 당시 프랑스의 유아사망률 0.8%와 비교해 보면 소련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극심하게 무너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토드는 그의 저서 '최종 붕괴'에서 이런 지표들을 이용해 소련 체제가 몰락에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미래 예측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지만, 주의 깊게 지표들을 분석하면 큰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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