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시인 숭의여대 교수
처음에는 놀리느냐는 항의성 대꾸를 하지만 좀 더 설명을 해주면 대개는 이해를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들 답한다.
내가 그들에게 해주는 말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정도 차이가 있지만 ‘치매 하면 곧바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는 일’이라는 생각을 흔히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치매 환자라도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환자 상태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장치가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이미 상당 정도 마련돼 있으니 혼자 모든 것을 다 감당한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치매에 걸린 가족을 환자라는 생각으로 대하지 말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져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조금 많은 어머니, 아버지를 대한다고 생각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라는 것이다. 이상한 행동을 해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예사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다. 이야기 끝에서는 정말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라. 그동안 잊고 있던 은혜를 되새겨보기도 하고 이에 대한 조그만 보답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고 덧붙인다.
치매라는 말은 사전을 찾아보면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치(癡)’에는 미치다 혹은 몰두한다란 의미도 있다. 그렇다면 치매를 어리석음에 몰두하는 일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리석음에 몰두한다! 멋있지 않은가! 뭔가 다른 심오한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만약 우리가 알고 배우고 깨우친 것을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면 어찌 될까? 심지어 좋은 일이 아니라 부끄럽고 창피한 혹은 극단적인 굴욕감을 느낀 일이라든가 힘들고 아픈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우리의 머리는 어떻게 될까? 잘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잊어버리는 일도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잘 잊는 혹은 적당히 잊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적당한 것인가. 사전적 의미에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 그렇다면 일상생활을 무난하게 영위할 만큼 적당하게 잊어 별일은 없지만 정녕 잊지 않고 살아야만 할 것들을 무자비하게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네 보통의 삶은 어떠한가?
그토록 눈 따갑고 살 아프게 싸우면서 도달했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 사회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세상이 어느 순간 변질돼 ‘안녕 하세요’라는 범상한 인사말도 감당 못하고 깊은 반성을 하고 살 정도가 된 우리의 집단적 망각은 적당한 망각인가? 또한 온몸 옴질거리며 느꼈던 사랑도 뼈에 각인됐던 고마움도 시간을 통과하면서 너무나 태연하게 잊고 사는, 그래서 이른바 평균적 소시민의 삶을 헤헤대며 사는 우리가 정말 잘 망각하고 살고 있는 것인가?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 우리, 미욱한 우리의 모습을 깨우치기 위해 우리들의 어머니는 ‘치매행’에 든 것이라고. 그래서 가끔 음식물이 소화되고 남은 것들의 처리를 낯설고 생생한 방법으로 손수 보여준다든가, 엉뚱한 말로 우리를 긴장시키면서 우리에게 치매라는 거울을 건네주는 것이라고! 반성하며 동시에 감사하면서 모실 일 아닐까?
강형철 시인 숭의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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