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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25] 도토리거위벌레

바람아님 2014. 1. 19. 12:00

(출처-조선일보 2011.08.22 )



요즘 등산을 하거나 대학 교정을 거닐다 도토리가 달려 있는 나뭇가지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걸 보았을 것이다. 관찰력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 가지의 절단면이 마치 누가 일부러 톱으로 자른 듯 아주 매끈한 걸 발견하고 적이 의아해했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일까?


범인은 뜻밖에도 몸길이가 1센티미터도 안 되는 도토리거위벌레라는 작은 딱정벌레이다. 별나게 긴 주둥이가 거위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도토리거위벌레라고 불리는 
이 딱정벌레 암컷은 상수리나무·신갈나무·갈참나무 등 참나무류의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알을 낳은 다음 그 도토리가 달려 있는 가지를 잘라 땅에 떨어뜨린다. 
 때로 지름이 5밀리미터도 넘는 제법 굵은 가지를 그야말로 "땀을 뻘뻘 흘리며" 자르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이 행동은 필경 어떤 뚜렷한 목적을 지닌 진화적 적응임이 
분명해 보인다.

도토리거위벌레는 우리나라 전역과 일본 및 중국의 일부 지방에만 분포하기 때문에 이 행동은 아직 세계 학계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연구진은 벌써 여러 해 동안 도토리거위벌레의 가지 절단 행동을 연구해왔다. 우리는 도토리거위벌레 어미가 자기 애벌레로 하여금 타닌(tannin)이 적은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일찌감치 나무로부터 격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시작했다. 타닌은 익지 않은 도토리나 밤을 씹었을 때 느끼는 떫은맛이나 적포도주의 텁텁한 맛의 주성분으로서 특정한 단백질과 결합하면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결과는 예측과 정반대로 나타났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알이 부화하여 애벌레가 도토리를 파먹기 시작할 무렵 땅에 떨어진 도토리와 아직 나무에 달려 있는 도토리의 타닌 농도를 비교해 보았더니 전자의 농도가 오히려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후 우리는 타닌의 효과가 곤충보다는 포유동물에게 더 크게 나타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어쩌면 타닌을 고농도로 유지하는 것이 다람쥐나 곰 같은 동물에게 먹힐 확률을 낮추는 게 아닐까 하고 후속 연구를 기획하고 있다. 여러분도 지금부터 도토리거위벌레가 떨어낸 도토리를 발견하면 도대체 왜 그 작은 곤충이 그처럼 힘든 톱질을 하고 사는지 생각해보시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우리에게도 꼭 알려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