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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24] 행동의 진화

바람아님 2014. 1. 18. 12:59

(출처-조선일보 2011.08.15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에는 토를 다는 사람이 없어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맨 마지막에 나오는 "나귀가 걷기 시작했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라는 문장을 두고는 많은 이들이 구시렁거린다. 진화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식이 부모의 모습을 닮는 것에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행동까지 닮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행동의 진화를 입증하는 것이 특별히 어려운 이유는 행동이란 좀처럼 화석으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화생물학에서는 현존하는 동물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그들을 서로 비교하며 이미 멸종하여 사라진 동물의 행동 유형을 유추해낸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신호에는 원시바다에 살던 공룡 플레시오사우루스(Plesiosaurus)가 고래처럼 자식을 돌보았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1987년 참으로 운 좋게 발굴한 임산모의 화석을 분석한 결과 산모의 몸집에 비해 태아의 몸집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로스앤젤레스 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은 플레시오사우루스가 대부분의 해양동물들처럼 많은 수의 새끼들을 낳은 게 아니라 고래처럼 한 마리의 큰 새끼를 낳아 오랜 기간 돌보며 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주 드물게 그림 같은 '행동 화석'이 발견되기도 한다. 고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공룡도 새처럼 알을 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왔다. 그동안 공룡 알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발견되었고 종종 둥지처럼 보이는 움푹한 곳에 모여 있는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지만 그런 증거들만으로는 공룡이 실제로 알을 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95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중국 학자들이 고비 사막에서 발견한 환상적인 화석이 소개되었다. 둥그렇게 모여 있는 알들 위에 어미 공룡의 뼈가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알을 품고 있다가 졸지에 산사태를 만난 모양이었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는 공룡학자 그랜트 박사가 언덕에 앉아 호숫가에서 풀을 뜯는 초식공룡들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 떼를 지어 이동하네. 떼를 지어 이동해." 여러 마리의 공룡들이 함께 이동한 듯 보이는 발자국들은 수없이 많이 봤지만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는 걸 보는 것은 감흥이 다르다. 비록 영화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