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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23] 옷의 진화

바람아님 2014. 1. 17. 09:26

(출처-조선일보 2011.08.08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연일 살인적인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30도를 웃도는 온도도 문제이지만 푹푹 찌는 습도가 더 견디기 어렵다. 이럴 땐 그냥 홀딱 벗고 지냈으면 좋겠다. 집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그냥 벗고 다닐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은 과연 언제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1988년 미국 콜로라도대학 고고학자들은 러시아 코스텐키 지방에서 동물의 뼈와 상아로 만든 바늘들을 발견하곤 그것들이 기원전 3만~4만년 전에 사용된 것들이라고 발표했다.

인간이 처음으로 옷을 입기 시작한 시점을 찾는 노력은 엉뚱하게도 기생충 연구에서 단서를 얻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인류학자들은 사람이(human louse)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인간이 약 10만7000년 전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인간은 영장류 중에서 유난히 털이 없는 종이기 때문에 사람이는 옷의 출현과 더불어 비로소 번성했을 텐데, 이 시기가 우리 조상들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보다 추운 지방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5만~10만년 전과 얼추 맞아떨어져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옷을 입는 관습은 오로지 인간 세계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물을 연구하는 내 눈에는 옷을 입는 동물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수서곤충의 일종인 날도래 애벌레는 작은 돌이나 나뭇조각들을 이어 붙여 매우 정교한 튜브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산다. 그런데 이 구조물이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애벌레가 돌아다닐 때 늘 함께 움직인다는 점에서 나는 그것을 집이 아니라 일종의 옷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바닷가에도 흔하게 기어 다니는 집게도 사실 집을 지고 다니는 게 아니라 일종의 갑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다. 인간이 성장하며 때맞춰 새 옷을 사 입어야 하는 것처럼 집게들도 몸집이 커지면 점점 더 큰 고둥 껍데기를 구해 갈아입는다.

그런가 하면 달팽이는 집게와 마찬가지로 단단한 껍질을 이고 다니긴 해도 그것이 주변 환경에서 얻은 게 아니라 스스로 물질을 분비하여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옷이 아니라 피부나 가죽의 연장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검사들의 '옷'은 아무래도 달팽이보다는 집게의 껍데기에 더 가까운 듯싶다. 동기가 검찰총장만 되면 모두 훌렁훌렁 벗어던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