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핫 이슈

[류근일 칼럼] 이상하고 괴이한 일들이 벌어지면

바람아님 2020. 3. 3. 08:29

(조선일보 2020.03.03 류근일 언론인)


자유당·유신·신군부 때 벌어졌던 정변의 공통점은
정상적 기준에선 상상 못 할 이상한 일이 저질러진 것
울산 선거 개입 의혹은 文 정권 전체가 걸린 문제


류근일 언론인류근일 언론인

4·15 총선을 앞둔 시국이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다. 으스스하고 음습하고 엽기적이며 흉흉하다.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마치 아마겟돈 전쟁이라도 치를 것 같은 종말론적 분위기가 온 땅을 뒤덮고 있다.

자유당 극성기, 유신 시대, 신군부-5공 시절이 연상된다.

역대 모든 정변(政變)엔 공통점이 있다.

정상적인 기준에선 상상도 못 할 이상하고 괴이한 일들이 예사로 저질러지는 것이다.


유권자들을 3인조, 4인조로 묶어 투표를 서로 감시하게 하는 게 어떻게 소문이 나지 않기를 바랄 것인가?

이게 1960년의 3·15 부정선거였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선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부마사태를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처럼 쓸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1980년대 5공 시절엔 치안국 남영동 분실에서 서울대생 박종철군을 죽여놓고선

"탁 하고 쳤더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역대 막강 정권들의 막장 이면엔 예외 없이 이런 지나침, 뻔뻔함, 억지, 궤변, 혼매(昏昧), 병증, 폭주가 깔려 있다.


조국 사태 이래 이 정권에서도 숱한, 이상하고 괴이한 일들이 일어났다.

"조국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 "중국발 폐렴 확진자 급증은 국가 체계가 잘 작동한다는 뜻" "대구 코로나, 대구 봉쇄…" 운운.

그중 압권(壓卷)은 청와대의 울산 관권·부정 선거 의혹이었다.

수사는 마무리되지 않았고 재판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관련자 13명이 기소되는 것으로 그것은 의혹을 넘어 형사피고 사건이 되었다.

결말 여하에 따라선 문재인 정권 전체가 왕창 무너질 수도 있다.

그만큼 관권·부정 선거는 한 정권의 끝이란 뜻이다.


그래서였을까. 운동권 정권은 지난해 말 공수처법안을 서둘러 강행 처리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을 호위무사로 끌어들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기용해 윤석열 검찰을 박살 냈다.

추 장관은 울산 사건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 사법부는 정치적 당파성을 더해 가는 듯했다.

왜 이 모든 이상하고 괴이한 일들일까? 바로, 울산 부정선거가 불러올 수도 있을 정권 붕괴의 악몽 때문일 것이다.

4·15 총선 분위기가 이렇듯 살벌해진 것도 "이번에 밀리면 우린 끝…"이란 위기감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4·15 총선에서 자유 진영이 지면 그것은 유사 전체주의의 나팔 소리가 될 것이다.

완장 부대와 홍위병 정치, 토지·대기업 공개념, 언론·종교·시장 통제,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등이 들어설 것이다.

풍요의 시기에 이념과 체제 문제엔 무관심한 채 그저 경제주의적 지표만을 외곬 기준으로 삼았던 한국인 세대가

그런 세상에서도 한번 살아보는 게 배움과 깨침을 위해 어떨지,

하긴 이런 위악적 농담을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만 같다.


반면에 운동권이 지면 울산시장 부정선거 소추가 박차를 가할 것이다.

기소된 13명의 윗선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할 것이다.

그 윗선의 윗선이 상황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관여했느냐 안 했느냐도 추급당할 것이다.

관여했다면?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임명한 노태악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대통령도 헌법을 위반하면 탄핵당할 수 있다."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도 140만명을 뛰어넘었다.

4·15 총선은 이래서 윤석열 검찰이 울산 부정선거 사건을 계속 수사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리고 수사가 정점(頂點)을 찍고 더 큰 사태로 비화할지 안 할지를 가늠할 결정적 뇌관이 될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이런 전체주의 변혁에서 우리보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희한한 건 거기서도 차베스 때 발탁된 여성 검찰총장 루이자 오르테가 디아스가 반(反)전체주의 투쟁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젊어선 법조 운동권도 했다.

그러나 2017년, 차베스의 후계자 마두로가 사법부를 주구(走狗)로 만들어 국회 입법권을 탈취하고 부정선거로

허수아비 제헌의회를 소집하자 "마두로는 브라질 건설 회사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았다"고 폭로하고

콜롬비아로 망명했다. 그녀는 한 상징이 되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그런 셈일까?


4·15 총선은 그래서 인적(人的)으론 윤석열 수사를 성원하는 범(汎)국민 연대,

그리고 '대가리가 깨져도' 조국-정경심-울산 피고인 13명-윗선-더 윗선을 지키려는 특정 범주 사이의 흑백 대치다.

제3의 자리는 없다. '안철수의 철수'가 말해주듯.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2/20200302040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