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2023. 2. 4. 00:24
사내는 흰 포말 앞에 서 있다. 바다를 향해 무언가를 뿌리거나 혹은 끌어당기는 듯한 그의 뒷모습에, 수평선은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다. 흰 포말은 비단결처럼 풀려 흐르고 도포자락은 파도처럼 휘몰아친다. 홀로 선 이 사내는 하늘과 조응하고, 바다는 그 사이에서 뒤챈다. 저 멀리 새가 난다.
사진 안에 흐르고 휘날리고 당기는 힘이 팽팽해 보는 이의 시선까지 강하게 끄는 이 흑백 사진은 사진가 박찬호의 ‘귀(歸)’ 중 하나다. 한 해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마을 제사를 마치고, 초헌관(제관)을 맡았던 촌로가 제물로 쓴 과일 한 조각을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다. 1월 1일(정월), 5월 5일(단오), 7월 7일(칠석) 등 음력으로 월과 일의 숫자가 같은 날이나 대보름이면 바닷가 마을에서 쉬이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눈에도, 뉴욕 타임스 지면에 이 사진을 크게 실은 벽안(碧眼)의 에디터에게도 낯설고 기이한 풍경이 되었다.
‘귀(歸)’ 사진 속에 담긴 숱한 기원처럼, 오늘은 대보름 크고 둥근 달을 향해 바람을 비는 날이다.
https://v.daum.net/v/20230204002427658
[사진의 기억] 누군가 ‘돌아간’ 지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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