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3. 10. 11. 03:04 수정 2023. 10. 11. 05:53
⑨ 6·25 반격과 북진
1950년 1월 12일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연설하면서,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미국의 동아시아 방어선은 “알류샨 열도를 따라 일본에 이르고 그 뒤엔 류큐 제도로 뻗는다. … 방어선은 류큐 제도에서 필리핀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대만과 남한은 미국의 방위선 밖에 있다는 얘기였다. 뒷날 공화당 지도자 로버트 태프트 상원의원이 지적한 대로, 애치슨의 연설은 공산주의 세력이 두 나라를 “공격하라는 초대장”이었다.
애치슨의 초대에 응해서,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남한을 침공했다. 전력에서 크게 열세였던 한국군은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고 단 사흘 만에 수도를 적군에게 내주었다. 전쟁은 북한 수뇌부 계산대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북한의 침공이 알려지자, 미국은 머뭇거리지 않고 한국을 도우려 참전했다. 어찌된 일인가? 애치슨 연설과 북한 침공 사이의 다섯 달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미국이 그렇게 단호하게 나섰는가?
애치슨의 ‘방어선 연설’이 있고 4주가 지난 2월 9일, 웨스트 버지니아의 작은 탄광 도시 휠링에서 여성 공화당원들이 연설회를 열었다. 연사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위스콘신 출신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였다. 그는 냉전에서 미국이 계속 밀린다고 지적하고, 그런 사정은 미국 정부 깊숙이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이 소비에트 러시아의 첩자가 되어 미국의 이익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공산주의자로 확인된 국무부 관리 57명의 명단을 가졌다고 선언했다.
그의 연설은 청중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그는 국무부의 공산주의자들이 특히 위험한 이유를 조리 있게 설명했다......매카시가 중서부의 유세 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에 돌아왔을 때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정치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제기한 의혹은 가장 뜨거운 정치적 논점으로 떠올랐다.
북한군이 남한을 침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궁지로 몰린 트루먼으로선 선택 여지가 없었다. 6월 26일 트루먼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극동의 해군과 공군이 한국에 개입할 권한을 부여했다......이런 극적 반전은 매카시 혼자 이룬 것이다.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시민들이 누리는 자유와 풍요는 그의 통찰과 용기에서 비롯했다.
https://v.daum.net/v/2023101103043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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