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23. 11. 15. 23:30
백발의 화가가 이젤 앞에 앉아 있다. 한 손엔 스케치로 보이는 종이를 들고, 다른 손엔 연필을 쥔 채 몸을 돌려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림 속 여성은 대체 누굴까?
이 그림은 미국 화가 애나 클럼키가 그린 ‘로자 보뇌르의 초상’(1898년·사진)이다. 보뇌르는 19세기 프랑스에서 동물 화가로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화가다. 클럼키는 21세가 되던 1880년 파리로 와서 8년간 미술 공부를 한 후 보스턴에서 초상화가로 활동했다. 10년 후, 그는 다시 파리로 왔다. 어릴 때부터 흠모하고 존경했던 보뇌르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였다. 보뇌르는 겨우 27세 때 밭갈이하는 황소들을 그린 ‘니베르네에서의 밭갈이’로 살롱전에서 대상을 차지해 화단의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 초상화를 그릴 당시 클럼키는 42세, 보뇌르는 76세였다. 클럼키는 존경하는 선배 화가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보뇌르는 이방인 후배 화가의 모델이 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두 여성의 우정과 사랑은 이듬해 보뇌르가 사망한 후에도 지속됐다.
그러고는 43년 후 보뇌르 곁에 나란히 묻혔다. 여성은 전문 직업을 갖는 것도 힘들던 19세기에,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싸우고 도전했던, 그리고 사랑하고 연대했던 위대한 여성들이었다.
https://v.daum.net/v/20231115233010438
싸우고 도전했던 여성들[이은화의 미술시간]〈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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