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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입장하고 계십니다!”

바람아님 2024. 10. 19. 03:21

조선일보  2024. 10. 19. 00:45

[아무튼, 주말]
[강성곤의 뭉근한 관찰]
투박하지만 따스했던 C선배를 추모하며

얼마 전 아나운서 왕고참 C 선배의 부고를 접했다. 20여 년 전 명퇴 때 잠깐 뵙고, 어쭙잖게 나는 독일 연수를 떠나는 바람에 연락이 끊겼다. 세월 지나 신문에서 별세 기사로 마주할 줄이야…. 1980년대 후반 조(組) 근무 때 그는 조장, 난 말번이었다. 어느 날 함께 숙직을 마치고 퇴근용 타각기(打刻器) 앞에서 그가 말했다. “괜찮으면 집까지 좀 태워다 주게.” 서민풍인 C 선배는 버스로 출퇴근했고, 나는 신참 주제에 르망을 월부로 뽑아 몰고 다녔다. 서울 은평구 대조동. 그냥 가기 뭣하다며 감자탕 집에 들렀다. 새로 알게 된 두 가지. 첫째, 감자탕은 감자와 관계없고 감저탕(甘猪湯)이 변한 말이며 감저는 단맛 나는 돼지등뼈를 의미한다고. 둘째, 대조(大棗)는 ‘큰 대추’라는 뜻. 그래서 동네에 대추나무가 많다고 했다.

C 선배는 먼저 발동을 거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술자리는 즐겼다. 고달팠던 4교대 야근.숙직은 뉴스를 1인당 7~8건씩 소화해야 해 입에서 단내가 났다. 위안이 필요할 터. 소주가 있어야 했다. 자정 뉴스를 마치면 조장이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준다......C 선배는 간부들과 불화했다. 특유의 야인 기질로 자주 뻗대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가 있었다.

큰 시련도 있었다. 1980년 서울 장충체육관. 주지하다시피 전두환씨가 무도하게도 이 나라 대통령이 된다. 그 취임식 때 C 선배가 의식 중계를 맡은 것. 국가 행사 방송은 잘하면 본전이요 못하면 쪽박이다. 그는 잔뜩 긴장했다.....열여덟 해 입에 붙은 ‘박정희’라는 이름과 마침내 작별하는 날 아닌가. ‘박정희가 아니라 전두환’, 연신 주문을 걸고, ‘대한민국 제11대 전두환 대통령 각하’가 입에 붙게끔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행사 당일, 중계석에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단상을 바라본 C 선배. 그런데 아뿔싸! 전두환씨는 영부인과 함께 등장했던 것. 불행히도 부부 동반 입장이라는 상황은 뇌리에 없었기에 ‘이순자’라는 이름은 아득하기만 했다. 결과는 최악 실수. “지금 전두환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입장하고 계십니다!” C 선배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가 1주일여 만에 나왔다.

선명한 2대8 가르마, 불그스레한 낯빛의 상남자 C 선배. 여느 땐 순박하지만, 울혈을 건드리면 마치 사자 같았던 의협(義俠)의 충청인. 공활한 가을 하늘 바라보며 그를 추모한다.


https://v.daum.net/v/20241019004531575
“전두환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입장하고 계십니다!”

 

“전두환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입장하고 계십니다!”

얼마 전 아나운서 왕고참 C 선배의 부고를 접했다. 20여 년 전 명퇴 때 잠깐 뵙고, 어쭙잖게 나는 독일 연수를 떠나는 바람에 연락이 끊겼다. 세월 지나 신문에서 별세 기사로 마주할 줄이야….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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