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5. 3. 16. 00:14
[노석조의 외설]
‘카드’ 없는 젤렌스키
1994년 ‘핵 카드’ 포기 각서 찢고 싶을 것
뜨거워진 ‘자강론’
박정희의 목숨 건 핵 도전을 다시 생각한다
“You don’t have the cards(넌 카드가 없잖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백악관을 찾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한 말입니다. 2022년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웠지만 자력으로 더는 버틸 수 없어 빼앗긴 영토를 되찾지도 못한 채 전쟁을 끝마쳐야 하는 우크라이나의 처지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트럼프가 유별난 것 같지만 사실 과거 다른 미 대통령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젤렌스키보다 더한 수모를 겪으면서도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 미군 철군 철회를 끌어낸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미국 문인 마크 트웨인은 말했습니다.
“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often rhymes(역사는 반복하진 않지만, 운율은 맞추곤 한다).”
역사가 아주 똑같이 반복되진 않지만, 시(詩)의 운율처럼 닮은꼴로 반복된다는 뜻입니다. 젤렌스키가 특별히 트럼프에 당한 것 같지만, 역사를 되돌아보면 수많은 약소국의 지도자들이 강대국이 강요하는 논리에 눌려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김종필 증언록’에 이런 대목이 나오더라고요.
“미국은 가치 없는 나라는 버린다. 스스로 가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1970년대 핵 기술, 방위산업,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면서 한국 전체를 거대한 병기창으로 변모시켰다. 미국은 월남 같은 농업 국가는 버려도 한국 같은 공업 국가는 버리지 않는다....."
김정렴 비서실장의 책 ‘아! 박정희’에선 이런 대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방위산업을 가진 중화학공업 국가는 반드시 수호한다는 것이 역대 미국 정부와 미 의회 지도자들의 확고한 내부적 결의와 합의이며, 앞으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중화학공업 발전과 방위산업 육성이 국군 전력 강화 못지않게 안보상 매우 중요하다.”
지금이야 ‘철통 같은’ ‘빛 샐 틈 없는’ 한미 동맹은 상수같이 여깁니다만, 시계를 조금만 거꾸로 돌려보면 그렇지 못했습니다. 과거 지도자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카드’를 확보해 놓으려 애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카드’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팽 당할 수밖에 없다는 ‘레알 폴리티크(Realpolitik)’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행동했습니다.
어느 나라도 내 나라를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내 나라는 내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넌 카드가 없잖아’라는 트럼프 말을 들었을 때 젤렌스키는 부다페스트 각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이 핵무장론을 거론할 수 있는 것도 최소한 ‘핵우산’을 발전시킬 대미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박정희 시대 ‘자강론’을 바탕으로 사실상 맨땅에서 군수 산업을 일구고 1970년 NPT 체제가 막 태동하던 시기의 거센 강대국들의 압박에도 목숨을 건 도전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궁화 꽃은 암살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https://v.daum.net/v/20250316001456076
박정희의 ‘무궁화’는 암살되지 않았다, 우크라 사태로 재부상한 자강론
박정희의 ‘무궁화’는 암살되지 않았다, 우크라 사태로 재부상한 핵 자강론
“You don’t have the cards(넌 카드가 없잖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백악관을 찾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한 말입니다. 2022년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웠지만 자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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