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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84] 나눔과 베풂

바람아님 2014. 6. 11. 10:42

(출처-조선일보 2012.10.2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아내는 나더러 자꾸 짠돌이라며 놀린다. 돈 쓰는 데 인색하고 남을 배려하거나 통 크게 베풀 줄 모른단다.
사실 이런 아내의 지적은 대체로 옳다. 사람들을 불러모아 거나하게 술을 사본 지 오래다. 
나 자신을 위해 좋은 옷이나 물건을 사는 일도 거의 없고 남에게 선물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베풀 줄 모르는 건 맞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베푸는 것 자체를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는 것 같다. 
베풂은 주고받는 주체가 분명한 행위이다. 주는 자가 있고 받는 자가 있다. 
막상 베풀려고 하면 어느덧 '가진 자'가 되어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 어색하다.

나눔은 베풂과 사뭇 다른 행위이다. 나눔은 애당초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나누기는 훨씬 편하게 하는 편이다. 이건 사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진화경제학자들의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 실험에 따르면,선진국 사람들은 상대에게 대개 20~50%를 나눠준다. 
일단 남과 나눠 가지면 내 것을 마음 편히 움켜쥘 수 있어 좋다. 어쩌면 이게 자본주의의 탈을 쓴 전형적인 위선일지 모르지만, 
나는 어쩌다 보니 내가 가진 자가 되어 있는 이 현실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늘 불편하다.

현재 삼파전을 벌이고 있는 진보와 보수 진영의 대선 주자들이 모두 입을 모아 경제 민주화를 부르짖고 있다. 
경제학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아니라 그보다 17년 먼저 '도덕감정론'에서 출발했더라면 이제 와서 애써 경제 민주화라는 
어색한 용어까지 만들며 법석을 떨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해온 동반성장과 마찬가지로 나는 경제 민주화도 베풂보다는 나눔을 그 핵심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독점금지법(anti-trust law)을 비롯한 선진국의 자유경쟁법(competition law)은 모두 나눔의 공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잔뜩 끌어모은 대기업더러 뒤늦게 뱉으라고 할 게 아니라 애당초 혼자 독식할 수 없는 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경쟁자가 거의 다 제거된 생태계는 다양성을 잃어 천재지변이나 병원균 등 외부의 침입에 취약해진다. 
자연 생태계에서 지나친 독점은 끝내 파멸을 부른다. 인간 세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