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2.11.05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행동이란 유전하는 게 아니라 당대에 습득하는 속성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하버드대 비교심리학자 B F 스키너는 상자 안에 쥐를 가둔다. 졸지에 '스키너 상자' 안에 갇힌 쥐에게는
그저 배고픔이라는 현실만 존재할 뿐 이렇다 할 기획도 정보도 없다.
그래서 쥐는 상자 안을 돌아다니며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본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단추를 눌렀더니 홀연 먹을 게 굴러떨어지는 게 아닌가?
단추를 누르는 자신의 행동과 횡재의 연관 관계를 대번에 알아채는 쥐는 거의 없다.
그러나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그 관계를 터득하면 허구한 날 연신 단추만 누른다.
스키너는 이를 '연관 학습'이라 부른다.
독일의 인지심리학자 볼프강 쾰러의 실험실에 있던 침팬지에게도 배고픔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덩그렇게 넓은 방에 먹을 것이라곤 천장 높이 매달려 있는 바나나뿐.
긴 막대기를 들고 아무리 뛰어본들 닿을 수 없던 바나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침팬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방 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상자들을 차곡차곡 포개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그 위로 기어올라가 막대기를 휘둘러 바나나를 따먹는
데 성공한다.
동물행동학에서는 이를 두고 '통찰 행동'이라고 한다.
스키너의 쥐가 보여주는 시행착오와는 차원이 다른 행동이다.
그렇다면 통찰력은 온전히 타고나는 능력일까?
쾰러가 만일 쥐를 가지고 실험했다면 통찰 행동을 발견했을 리 없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 침팬지 모두가 통찰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통찰력은 스키너의 쥐와 쾰러의 침팬지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나는 최근 이 칼럼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통찰'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누구나 오랜 연구, 폭넓은 독서, 활발한 토론 등을 통해 통찰력을 기를 수 있다.
이참에 함께 뒤돌아보고, 건너다보고, 헤집어보았으면 좋겠다.
버뮤다 제도에서 목회하고 있는 마일즈 먼로 목사는 예지력(vision)을 다음과 같은 멋진 말로 설명한다.
"과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통찰력을 갖추면 미래가 보인다(Foresight with Insight based on Hindsight)".
결코 순탄치 않을 향후 5년간 이 나라를 이끌 명견만리(明見萬里)의 통찰력을 지닌 후보가 누군지 우리 모두 밝게(洞) 살필(察)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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