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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82] 소식(小食)과 장수(長壽)

바람아님 2014. 6. 6. 17:52

(출처-조선일보 2012.10.08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추석 연휴를 마치고 돌아온 동료들끼리 가장 많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아마 체중일 것이다. 
오랜만에 친지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었더니 없던 배가 나왔다며 헬스클럽으로 달려가는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적게 먹어야 오래 산다는 얘기는 이제 거의 상식처럼 돌아다닌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열량 섭취를 10~40% 줄인 붉은털원숭이들의 
노화 관련 질병의 발병 시기가 상당히 늦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위스콘신 국립영장류연구센터의 
연구 결과와 달리 이번 연구에서는 수명은 그다지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명이란 소식뿐 아니라 유전과 환경 그리고 꾸준한 운동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해준 셈이다.

'인간은 왜 늙는가'라는 책으로 우리 독자에게도 친숙한 미국 텍사스주립대 건강과학센터 
스티븐 어스태드 교수는 일찍이 무조건 적게 먹고 오래 사는 것은 진화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음을 밝혔다. 
소식을 하면 수명이 연장된다는 연구에 동원된 대부분의 동물은 오래 살긴 하는데 번식 행동도 거의 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번식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동물과 조금 일찍 죽더라도 활발한 성생활 덕택에 자손을 많이 남긴 동물 
중에서 누구의 유전자가 후세에 더 많이 남았겠는가?

어스태드 교수는 여러 해 전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의 저자 스튜어트 올샨스키와 조금은 황당한 내기를 벌여 
화제가 되었다. 2050년이 되기 전에 150세 인간이 나타날 것이라는 어스태드의 예언이 발단이었다. 
이들은 지금 2050년까지 적금을 붓고 있다. 지금은 푼돈을 내지만 2050년 무렵이 되면 물경 5억달러에 이를 것이란다. 
그래서 나도 이 '세기의 내기'에 동참했다. 돈은 내지 않고 입으로만. 
어스태드 교수와의 오랜 친분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샨스키에게 걸었다. 
2050년 이전에 150세 인간이 나타나려면, 그는 이미 태어나 우리와 함께 살고 있어야 한다. 
언젠가 인간의 수명이 150세가 될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할 용의가 있지만, 150년을 살 누군가가 나와 함께 이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억울하다. 나는 100년도 못 살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