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6.10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2015년 온실기체 배출권 거래제 시행을 위해 환경부가 마련한 할당 계획안을 두고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되면 기업의 부담이 커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 생존권 위협이 현실로 드러나는 상황에서 가장 큰 원인 제공자 중의 하나인 기업이 이처럼 대놓고 발뺌하는 모양새는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근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근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배출권 거래제가 과연 도덕적인지 묻는다.
국립공원에 쓰레기를 버려 벌금을 부과받았다면 그것은 단순히 청소 비용을 지불하라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향유해야 하는 자연환경을 훼손한 데 대한 처벌을 의미한다.
샌델은 부유한 국가가 다른 국가로부터 배출권을 사서 스스로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의무를 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범국가적 기후변화 대응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동 희생정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대기업 회장이 비즈니스 효율을 높이기 위해 기꺼이 비싼 벌금을 내고라도 장애인 전용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려는 행위를
우리는 용납하지 않는다. 배출권 거래제가 기업의 도덕성에 면죄부를 주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당황하는 데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당황하는 데에도 일리는 있다.
오랫동안 우리 정부는 기후변화 관련 회의에 다녀온 후 온실기체 감축 의무국에 끼지 않기 위해 펼친 '미꾸라지 전략'의 성공담을 늘어놓으며 국민을 안심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확히 말하면 2008년 8월 15일 우리 정부는 돌연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내세우며 기업에 시한폭탄을 안겼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라는 옛말이 무색한 순간이었다. 일찌감치 감축 의무국이 되어 '21세기 탄소경제'에 대한 준비를 마친 선진국들 앞에 갑자기 발가벗긴 채 끌려 나온 형국이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마중물'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원칙의 회초리는 절대로 거두지 말아야 하지만, 진정으로 힘들어하는 기업에는 따뜻한 마중물 배려를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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