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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83] 붉은 여왕 (The Red Queen)

바람아님 2014. 6. 9. 16:29

(출처-조선일보 2012.10.15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정확하게 2년 전 오늘 괴팍하지만 기발했던 진화생물학자 리 밴 베일런(Leigh Van Valen)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영국의 과학저술가 매트 리들리의 책 '붉은 여왕' 덕택에 진화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에게도 퍽 친숙해진 '붉은 여왕 가설'을 처음으로 제안한 학자였다.

루이스 캐럴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으로 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앨리스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 서양 장기판의 붉은 여왕에게 손목을 붙들려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한참을 달렸는데 왜 여전히 같은 나무 밑을 달리고 있느냐고 묻자 붉은 여왕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너희 동네는 느린 동네로구나. 여기서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단다. 

네가 어딘가에 다다르고 싶으면 적어도 두 배로 빨리 달려야 한단다."

소설에서 빌려온 이 유비
(類比-맞대어 비교함)는 훗날 멸종, 공진화, 성선택 등 진화의 주요 개념들을 설명하는 가장 탁월한 

핵심어로 자리잡는다. 그는 또한 20종의 화석 포유류 신종을 기재했는데 전부 '반지의 제왕'으로 잘 알려진 톨킨의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그야말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에서 나온 상상력이다.


평생 3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한 그였지만 붉은 여왕 가설을 설명한 논문이 기성 학술지들로부터 잇따라 게재 불가 판정을 받자

아예 '진화이론(Evolutionary Theory)'이라는 새로운 학술지를 창간하고 그곳에 자신의 논문을 발표한다. 

그는 또한 '하찮은 연구저널(Journal of Insignificant Research)'이라는 학술지도 만들어 젠체하는 학자들의 꼴불견을 대놓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의 기이한 행동은 어느 학회에서 기조강연을 시작하며 직접 공룡의 구애노래를 부른 일화로 정점을 찍는다. 

시간이 다 됐는데 기조강연자가 나타나지 않아 술렁이기 시작할 즈음 강연장 뒤편에서 무언가 무거운 게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그가 두툼한 책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집고 또 떨어뜨리며 걸어오더라는 것이었다.

강단에 올라선 그는 그 옛날 공룡들이 걸을 때 그런 소리가 났었다며 자작곡 '공룡들의 섹스'를 목청껏 불러젖혔다고 한다. 

"발을 굴러라, 꼬리를 내리쳐라, 리히터 규모 6.6의 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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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 가설

붉은 여왕 가설(Red Queen's Hypothesis)은 진화론에서 거론되는 원리로, 주변 자연환경이나 경쟁 대상이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때문에 어떤 생물이 진화를 하게 되더라도 상대적으로 적자생존에 뒤처지게 되며, 자연계의 진화경쟁에선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는 뜻을 의미한다. 

이 원리는 진화론뿐만아니라 경영학의 적자 생존 경쟁론을 설명할 때도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유래

붉은 여왕이라는 말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주인공 앨리스에게 말하는 내용에서 비롯되었다. 

소설 속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붉은 여왕이 

다스리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어떤 물체가 움직일 때 주변 세계도 그에 따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끊임 없이 

달려야 겨우 한발 한발 내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시카고 대학의 진화 학자 밴 베일른생태계의 쫓고 쫓기는 평형 관계를 묘사하는 데 썼으며, 

그가 이러한 진화론적 원리를 '붉은 여왕의 효과'(Red Queen Effect) 라고 부른 것이 현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