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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78] 몸에 좋은 음식

바람아님 2014. 8. 12. 17:07

(출처-조선일보 2014.08.12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지금은 6척 장신에 당당한 근육질 남정네가 되었지만 아들 녀석은 아기 때 워낙 입이 짧아 우리 부부의
애를 참 많이 태웠다. 키는 백분위로 상위 15%에 속했건만 체중은 바닥에서 아예 도표 밖으로 밀려날 
판이었다. 음식 한 점을 먹이려고 악어 흉내에서 비행기 곡예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짓이 없었다.

최근 미국 노스웨스턴대와 시카고대 연구진은 아이들에게 그 음식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를 말해주면 
오히려 더 안 먹는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3~5세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각각 과자와 
홍당무를 먹은 아이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을 읽어준 다음 과자 또는 홍당무를 먹게 하는 실험을 했는데,
홍당무를 먹으면 더 튼튼해지고 셈도 더 잘한다는 얘기를 들은 아이들은 오히려 홍당무를 덜 먹더라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어른들이 애써 몸에 좋다고 말하는 순간 아이들은 그 음식이 맛이 없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다는 걸 알아챈단다. 자식 양육에도 무턱대고 훈육적인 방식보다는 고도의 심리전이
필요한가 보다. 우리 부부도 아들에게 몸에 좋다는 얘기를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이 연구 결과에 고개를 끄덕이는 부모가 많겠지만 나는 경쟁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렸을 때 음식에서 파를 골라내는 우리를 보시고 아버지가 일부러 파를 맛있게 드시면서 "파가 그렇게 머리에 좋다네" 하시는
바람에 우리 사형제는 앞을 다퉈 파를 골라 먹는 촌극을 벌였다. 아버지는 종종 우리에게 나이에 상관없이 퍼즐을 함께 풀게 
하고 가장 먼저 푼 아들에게 대놓고 상금을 하사하는 처절한 경쟁 체제를 도입했다.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번번이 고배를 
마시던 나로서는 음식 맛 따위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내 설렁탕 그릇은 그야말로 국물 반, 파 반이다. 
그간 먹은 파 덕에 타고난 것보다 머리가 후천적으로 조금이나마 좋아졌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