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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77] 장만영과 오영수

바람아님 2014. 8. 5. 10:16

(출처-조선일보 2014.08.05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가 올해로 벌써 14년째를 
맞고 있다. 지난 5월 8일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김광균, 김사량, 오영수, 유향림, 이용악, 장만영의 작품 
세계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렸고, 그다음 날 밤에는 우리 집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게'라는 이름의 낭독회가 있었다.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로 시작하는 김광균'와사등'은 내 또래라면 누구나 
시험을 대비해 달달 외었던 시다. 한국문학에 모더니즘 바람을 불러일으킨 대표작이라던 국어 선생님의
설명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금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인 중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시인 장만영소설가 오영수에 대해 각별한
추억을 지니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우연히 따라간 백일장에서 나는 뜻밖에 시 부문 장원을 
거머쥐었다. 여느 해처럼 국어 선생님이 심사했으면 문예반원도 아닌 내가 뽑히기 힘들었을 텐데 
그해에는 장만영 선생님이 외부 심사위원으로 오신 덕에 행운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뛰어나게 우수하다"는 선생님의 극찬은 나를 글쟁이로 만들어준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나름 문인이 되기로 작정한 그 무렵 어머니가 '한국단편문학전집'을 사주셨다. 
김동인의 '배따라기'로 시작하여 선우휘의 '불꽃'으로 끝난 그 전집의 소설 수백 편 중에서 막 성(性)에 눈뜨기 시작한 내게 
가장 외설적으로 다가온 작품이 바로 오영수의 '메아리'였다. 6·25전쟁이 끝난 다음 산속에 들어가 살던 젊은 부부가 
"움막에서 훨훨 벗고는 앞만 가리고" 뒷개울로 올라가 멱을 감고 "기어코 알몸인 아내를 알몸에 업고 내려오는" 얘기일 뿐인데 
해마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노골적인 성희가 묘사된 것도 아니고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그러나 여전히 
부끄러운 남녀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건만 내게는 그 어떤 소설보다도 아름다운 에로티시즘으로 다가온다. 
날것의 자연보다 더 선정적인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