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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03] 생물의 방어

바람아님 2014. 8. 17. 21:31

(출처-조선일보 2013.03.05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박쥐는 칠흑 같은 밤에도 초음파를 발사하여 그것이 물체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걸 감지하여 장애물도 
피하고 나방도 잡아먹는다. 그런가 하면 박쥐의 초음파에 쏘인 나방은 박쥐가 자기를 겨냥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갑자기 예측 불허 행동으로 박쥐를 혼란에 빠뜨린다. 
지그재그로 날거나 불규칙한 나선을 그리며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러면 박쥐는 박쥐대로 나방의 
행동을 예측하며 진로를 수정한다. 예측이 맞아떨어지면 배를 채우지만 그러지 못하면 곯는다. 
포식자와 피식자는 오늘도 이렇듯 쫓고 쫓기는 공진화 곡예를 하며 산다. '역동적인 대한민국(Dynamic 
Korea)'이라 했던가. 자연이야말로 진짜 역동적인 곳(Dynamic Nature)이다.

자연은 먼 옛날 벌어진 진화의 결과에 따라 각본대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 자연의 생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한다. 
꼬마물떼새는 강변 자갈밭에 알을 낳는다. 
언뜻 보면 자갈과 구별하기 어려운 모양과 색을 지닌 알을 낳기 때문에 어미는 종종 
먹이를 구하려 둥지를 비울 수 있다. 그러나 알에서 새끼가 깨어나면 허구한 날 둥지에 앉아 그들을 품어야 한다. 
이때 둥지를 향해 위협적인 존재가 다가오면 어미 새는 상황에 따라 다른 적응 행동을 보인다.

어미 새는 일단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숨는다. 그러나 들켰다고 생각하면 홀연 저만치 날아가 날개가 부러져 잘 날지 못하는 
양 거짓 행동을 연출한다. 이 무슨 횡재냐며 천천히 접근하는 포식자를 점점 더 둥지로부터 멀리 유인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날아 도망친다. 영특한 꼬마물떼새 어미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일 여우나 고양이 같은 포식 동물이 아니라 소나 
말이 둥지로 다가오는 경우에는 초식동물에게 날개가 부러졌다는 사기를 쳐본들 소용이 없다는 걸 아는 듯 둥지 위에 꼿꼿이 
서서 홰를 치기 시작한다. 제발 자기 둥지를 밟지 말아 달라고.

이러한 먹고 먹힘이 자연 생태계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기업 생태계에서도 늘 벌어지고 있다. 이에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은 
최근 '생물의 방어'라는 주제로 특별 전시회를 시작했다. 박쥐와 나방, 그리고 꼬마물떼새의 역동적인 삶이 전시되어 있다. 
온 부서가 단체로 와서 관람도 하고 전략 회의도 하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