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행복의 조건에 관해 물어와 짤막하게 몇 마디 했는데,
내가 한 말치고 퍽 괜찮았던 것 같아 여기 다시 적는다.
'쌍둥이별'이라는 영화의 원작소설을 쓴 조디 피코(Jodi Picoult)가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또 다른
소설 '19분'에서 소개한 행복의 수학 공식이 있다.
그에 따르면 행복의 공식은 '현실÷기대'란다. 분수로 표현하면 현실은 분자이고 기대는 분모가 된다.
그렇다면 행복해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행복해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 셈이다.
우선 분자인 현실을 개선하는 방법이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 방법을 사용하여 좀 더 행복해지려 한다.
그러나 요즘 같은 무한 경쟁 시대에 이는 결코 만만한 방법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이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분모를 작게 만드는 것이다.
분수의 값을 크게 하려면 분자를 키우는 것보다 분모를 줄이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99/4에서 분자를 하나 키워본들 100/4 즉 25밖에 안 되지만, 분모를 하나 줄이면 99/3 즉 33이 된다.
법정 스님께서 설파하신 무소유를 실천하면 분모가 아예 '0'(영)이 되어 행복은 분자에 상관없이 무한대가 된다.
가난한 나라 부탄 국민의 97%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단다.
대학 시절 어느 동아리 문집에 이런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대학 시절 어느 동아리 문집에 이런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함박눈이 흩날리는 명동길을 걸어 벗들이 기다리는 찻집에 들어설 때
코끝을 간질이는 두향차 내음. 행복이란 뭐 이런 게 아닐까?'
내 주제에 뭘 원한다고 해서 그리 될 리 있겠는가 생각하며 늘 별것 아닌 일에 행복을 운운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남들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던데 나한테는 여태껏 가슴이 먼저 뛰고 나면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대만큼 안 되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작은 것에 만족하려 애쓰며 산다.
이렇게 얘기하면 자칫 내가 일찌감치 포기하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한 삶을 사는가 싶겠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자칫 내가 일찌감치 포기하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한 삶을 사는가 싶겠지만,
나는 사실 치열하게 노력하며 산다.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는 오지 않을 수 있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살 뿐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원하는 것의 반만이라도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 숨죽이며 산다.
평생 그렇게 살았는데 뜻밖에 노력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얻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