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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05] 명품과 짝퉁의 차이

바람아님 2014. 8. 28. 10:48

(출처-조선일보 2013.03.19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공영방송 KBS가 오는 4월 개편에서 그들의 3대 다큐인 과학·역사·환경스페셜을 폐지한단다. 
이 중 역사스페셜과 환경스페셜은 1999년 일요스페셜에서 분할되어 탄생했으니 어느덧 유아기를 지나 
어엿한 열세 살 청소년이 된 셈이다.
KBS는 애써 키워 의젓한 중학생이 된 자식을 내치고 시사와 의제 기능을 강화한 '명품' 다큐 코너를 
입양하겠단다. 얼마 전 백화점 명품 세일 행사가 그야말로 인산인해의 아수라장이 되었다던데,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행태가 이제 공영방송의 이사회까지 덮친 모양이다.

루이뷔통과 버버리는 각각 1854년과 1856년에 설립되었고, 롤렉스 시계는 1905년, 몽블랑 만년필은 
1908년, 샤넬 화장품은 1909년에 출시된 제품들이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줄로 알고 있는 프라다와 펜디도 이미 1913년과 1925년에 첫선을 보였다. 
명품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요즈음 하루아침에 엄청난 노력을 들여 마치 명품처럼 만들어 내놓은 제품들이 넘쳐난다. 
아직 표준어는 아니지만 우리는 그들을 흔히 '짝퉁'이라 부른다.

환경스페셜은 다음 주 수요일에 537회를 방영한다. 한 회가 50분씩이니 그동안 방송 시간만 무려 448시간에 달한다. 
최근 방영된 '일생'이나 '제돌이의 꿈'은 한국형 자연 다큐의 어른스러움을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용하는 가방과 지갑도 언젠가는 명품이 될 수 있다는 꿈을 키워가는 국산이 아니던가? 
어느덧 이따금씩 명품 알을 낳을 정도로 성숙한 거위의 배를 가르고 짝퉁을 끄집어내려는 KBS의 현란한 마술에 숨이 막힌다.

KBS는 또한 2001년에 시작한 'TV 책을 말하다'를 '즐거운 책읽기'라고 개명하여 한밤중 중환자실로 내몰더니 이번에 
아예 산소호흡기를 떼어버리기로 했단다. 
이쯤 되면 KBS는 스스로 공영방송이기를 포기했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자연 다큐는 아직 EBS의 '하나뿐인 지구'가 있다지만 책 프로그램은 이제 어느 방송이 짊어지려나? 
TV 시청료를 낼 때 방송국을 지정할 수만 있다면 나는 EBS나 어디든 격조 있는 책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에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