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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06] '가지 않은 길'

바람아님 2014. 9. 1. 18:11

(출처-조선일보 2013.03.26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지으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가지 않은 길'은 아마 이 땅의 중·장년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시일 것이다. 
전체를 암송하지는 못하더라도 위에 인용한 시의 마지막 구절은 모두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으리라.
오늘은 바로 1874년 시인 프로스트가 태어난 날이다. 
'가지 않은 길'은 그가 병 때문에 하버드대학을 중퇴하고 뉴햄프셔주에 있던 그의 할아버지 농장에 머물던 30대 초반에 쓴 시이다.

지난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거의 2년 가까운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 "되돌아보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궁금증도 있습니다"고 말했단다. 박 장관은 이 시를 각별히 사랑하는 듯싶다. 나 역시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처음 배운 이 시를 
늘 가슴에 품고 살았으며 실제로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 때문에 내 삶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시 한 편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통섭의 개념을 소개하느라 분주하던 2000년대 후반 어느 날 당시 서강대 철학과에서 가르치시던 엄정식 교수께서 내게 또 
다른 프로스트의 시를 알려주셨다. 
'담을 고치며(Mending wall)'라는 시인데 거기에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멋진 구절이 나온다. 
'담을 만들기 전에 나는 묻고 싶다
/내가 무엇을 담 안에 넣고 무엇을 담 밖에 두려는지
/그리고 누구를 막아내려는지.' 
그는 또한 '거기에는 담을 좋아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며 끊임없이 담을 무너뜨리는 자연의 힘을 묘사했다. 
통섭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보다 멋지게 담아낸 글은 없다.

이제 나는 '가지 않은 길'을 내 가슴에서 풀어주련다. 
시인은 다음 날을 위해 한 길을 남겨두었다면서도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했지만, 
우리는 이제 다시 돌아와 가지 않았던 길을 갈 수 있다. '좋은 담'이란 가지 않아 아쉽고 궁금했던 그 길을 찾아 언제라도 쉽게
넘을 수 있는 낮은 담을 말한다.
 '인생 이모작'은 바로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지 않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