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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79] 인간 프란치스코

바람아님 2014. 8. 19. 07:13

(출처-조선일보 2014.08.19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 행보가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교황명으로 권위와 위엄이 아니라 순종과 청빈의 상징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선택한 것에서 
비롯하여 교황 관저가 아니라 교황청 직원들과 바티칸을 방문하는 추기경들이 묵는 게스트하우스 
'성녀 마르타의 집'에 기거하며, 소년원의 소년·소녀들은 물론 병자들 발까지 씻기고 입을 맞추는가 
하면, 교황이 된 후 처음 맞은 생일에는 성 베드로 성당 주변 노숙자들을 초대해 식사를 함께하기도 했다.
이번 방한 때에도 국산 소형차를 이용했으며 대전에는 KTX를 타고 가셨다. 
지난해 3월 제266대 교황으로 즉위한 이래 17개월 동안 그가 보인 파격 행보는 이 짧은 지면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실로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내가 프란치스코 교황께 가장 크게 감동했던 사건은 작년 10월 그가 바티칸광장에서 강론을 하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갑자기 꼬마가 강단으로 올라와 교황을 빤히 쳐다보기도 하고 교황의 의자에 앉기도 하고 심지어는 교황의 다리를 껴안기도 했다. 엄숙해야 할 상황에서도 교황은 아이를 물리치기는커녕 
한 손으로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어린 아이를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니라'는 예수님 말씀(마태복음 19장 14절)이 떠올랐다.

나는 이 시점에서 이렇게 묻고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진정 파격인가. 바티칸의 오랜 관행을 깨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저 예수님이 모름지기 기독교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알량한 자존심을 어쩌지 못해, 어쩌다 내게 주어진 하찮은 지위에 연연해 선뜻 행하지 못하는 일을
그는 별 거리낌 없이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하늘에서 내려온 성자에게 열광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에게 감동하고 있다. 
인간 프란치스코, 그는 그래서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