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0.22 박경옥 SERICEO 독서코칭 컨설턴트)
몇 달 전에 '소통'을 주제로 강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자료를 준비하다 문득 우리 집 위층에 사는 꼬마들이 떠올랐다.
새 이웃이 이사 오고부터 위층에서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큰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 같고, 때로는 마구 뛰어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쿵쾅거리며
집 천장을 울렸다. 낮에는 그럭저럭 참을 만했는데, 새벽 일정이 있어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소리 때문에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단단히 주의를 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려 나가봤더니 귀여운 꼬마 둘이
단단히 주의를 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려 나가봤더니 귀여운 꼬마 둘이
포도 몇 송이를 들고 현관 앞에 서 있었다. "포도 맛보세요"라고 수줍게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그간의 불만이 눈 녹듯 사라지면서 외려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 후로 아이들을 만나면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 하고 수다를 떠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위층에서 나는 소리가 줄어든 건 아니고,
그렇다고 위층에서 나는 소리가 줄어든 건 아니고,
가끔 수면을 방해받는 것도 여전하다.
그런데 어쩐지 그 소리가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원래 다 그러면서 크는 것 아닌가,
우리 아이들도 저때 많이도 쿵쾅거렸지'로
생각을 바꿨다. 위층에서 아이들이 조용하면
혹시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마음을 여느냐 닫느냐에 따라 이렇게 관점이
달라지고, 같은 소리인데도 듣는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신기할 정도다.
두말할 것도 없이 말과 글은 본격적인 소통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 옛날 빨래터에
모인 아낙들은 그들의 언어로 속 깊은 사연까지
털어놓고 쉼 없이 수다를 떨지 않았던가.
SNS와 모바일 메신저는 웹 세계에서의 소통을
증폭시켰지만, 실제 일상에서의 소통이 그만큼
늘어난 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바로 옆집, 위층에 사는 이웃의
얼굴을 알려 하지 않고, 이따금 마주쳐도
침묵만 오간다.
나는 강의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각박해지는 세상을 수다로 채우면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한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진짜 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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