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세상이야기

무관심·홍보 부족..외면받는 '전광판 소녀'

바람아님 2014. 10. 30. 10:02
'사랑이 넘치는 서울이 되길 바래요.'

29일 오전 8시 서울시청 서쪽 외벽에 설치된 전광판이 반짝이는 문구를 내보냈다.

하지만 13m×8m 크기의 전광판은 출근길 시민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거대한 전광판이 서울시의 전시행정을 웅변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6월20일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겠다'며 어린이가 메시지 보드를 들고 있는 모습의 이 전광판을 설치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전광판을 설치하기 위해 건물 외벽 일부를 뜯어내 원래 디자인을 바꾸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는 전광판을 "서울의 대표 소통 상징물이자 관광명소로 발전시키겠다"며 의욕을 앞세웠다. 시민들이 서울시에 바라거나 응원하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올려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서울시가 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서울시청 앞을 지나는 수많은 시민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전광판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직장인 김수정(27·여)씨는 "매일 이 근처를 지나고 있지만 이런 것이 있는지는 몰랐다"며 "시청 앞에 그렇게 큰 전광판이 설치됐는데, 왜 알지 못했을까"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회사원 김모(32·여)씨도 "처음에는 전광판이 눈에 띄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지 않게 됐다"며 "바쁘게 지나다 보니 전광판을 볼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 6월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겠다'며 서울시청 외벽에 전광판을 설치했지만 시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서울시는 시민과의 소통을 위해서라면서 이 전광판 설치에 5000여만원을 들였다. 전기료 등을 고려하면 더 많은 운영비가 들어간다. 이름도 거창하게 '신(新)신문고'라고 붙였다.

하지만 세계일보가 이날 오전과 28일 오후 7∼10시 서울시청 전광판에 게시되는 메시지를 세어본 결과 시민참여 메시지는 각각 20여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서울시에서 준비한 '예시 메시지'였다. 심지어 28일 오후에는 한 시민이 보낸 '왜 같은 메시지만 반복되느냐'는 비난 문구가 전광판에 뜨기도 했다. '신문고'라는 명칭을 붙일 만한 억울한 내용이나 지적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지난 4개월간 게시판에 2만5525건의 메시지가 올라갔으며, 이는 하루평균 212건이라고 실적을 홍보하고 있다.

전광판이 외면받는 이유는 눈에 뜨이는 메시지나 문구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를 시민들의 참여의식 부족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처럼 게시판 이용률이 저조한데도 서울시는 내년 초까지 예산을 추가 확보해 현재의 전광판을 10억원대의 새 전광판으로 교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시청 인근을 자주 지나다닌다는 김민희(29·여)씨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고 해서 시 정책에 반영되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현재의 전광판 운영을 비판했다.

첫 전광판에 대해 호응이 없자 6개월 만에 다시 10억원을 더 들여 새 전광판을 설치하는 이유와 관련해 서울시는 모호하게 답하고 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전광판이 주변 게시물에 비해 어두운 편이라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며 "인근 사옥에 있는 전광판 수준으로 개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