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2.0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몇 해 전 대만 중앙연구원의 후스(胡適) 기념관을 찾았다.
그곳 기념품점에서 후스의 친필 엽서를 몇 장 구입했다.
그중 한 장은 그 후 내 책장 앞쪽에 줄곧 세워져 있다.
"대담한 가설, 꼼꼼한 구증(大膽的假設, 小心的求證)."
"대담한 가설, 꼼꼼한 구증(大膽的假設, 小心的求證)."
가설(假說)이라 하지 않고 가설(假設)이라 쓴 것이 인상적이다.
학술적 글쓰기의 핵심을 관통했다.
공부는 가설(假設) 즉 허구적 설정에 바탕을 둔 가설(假說)에서 출발한다.
공부는 가설(假設) 즉 허구적 설정에 바탕을 둔 가설(假說)에서 출발한다.
혹 이런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볼 수는 없나? 그런데 그 가설이 대담해야 한다.
모험적이다 못해 다소 위험해 보여도 가설은 가설이니까 상식에 안주하면 안 된다.
새로운 가설에서 새로운 관점, 나만의 시선이 나온다.
보던 대로 보고 가던 길로 가서는 늘 보던 풍경뿐이다. 볼 것을 못 보면 못 볼 것만 보고 만다.
각주1.가설(假設)- 실제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치다.
각주2.가설(假說)- <논리> 어떤 사실을 설명하거나 어떤 이론 체계를 연역하기 위하여 설정한 가정.
이로부터 이론적으로 도출된 결과가 관찰이나 실험에 의하여 검증되면,
가설의 위치를 벗어나 일정한 한계 안에서 타당한 진리가 된다.
그런데 이보다 중요한 것이 소심한 구증이다. 소심하다는 말은 꼼꼼하고 조심스럽다는 뜻이다.
가설은 통 크게 대담해야 하지만 참으로 세밀한 논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내가 본 것을 입증할 길이 없다.
소심한 구증 없는 대담한 가설은 황당한 소리가 되고 만다.
명나라 구곤호(瞿昆湖)가 쓴 '작문요결'을 보니 이런 대목이 있다.
명나라 구곤호(瞿昆湖)가 쓴 '작문요결'을 보니 이런 대목이 있다.
"글쓰기의 방법은 다만 소심(小心)과 방담(放膽)이란 두 가지 실마리에 달려 있다.
이때 소심은 꼭 붙들어 놓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만약 아등바등 붙드는 것이라면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활발한 의사를 얻는 데 방해가 된다.
방담은 제멋대로 함부로 구는 것이 아니다.
만약 멋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라면 절도가 없고 방탕해서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본 것이 광대한 뒤라야 능히 세세한 데로 들어갈 수가 있다.
소심은 방담한 곳을 통해 수습되고 방담은 소심한 곳을 통해 확충된다.
선배의 글은 대충 보면 우주를 포괄한 듯 드넓어도 찬찬히 점검해보면 글자마다 하나도 어김없이 꼭 맞아떨어진다."
시원스러운 생각을 꼼꼼한 논증을 통해 입증하려면 소심방담해야 한다.
시원스러운 생각을 꼼꼼한 논증을 통해 입증하려면 소심방담해야 한다.
꼼꼼함 없이 통만 커도 안 되고 따지기만 할 뿐 큰 시야가 없어도 못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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