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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사물 尊稱(존칭)' 권하는 사회

바람아님 2014. 12. 7. 09:58

(출처-조선일보 2014.12.06 김성현 문화부 차장)


김성현 문화부 차장 사진담배를 끊은 뒤로 아침 출근길에 껌이나 사탕을 사는 습관이 생겼다. 

껌 한 통을 사 들고 계산대로 향하니 "1000원이십니다"라는 점원의 말이 들려온다. 

손님 대신에 껌을 높이는 이른바 '사물 존칭(事物 尊稱)'이다.

"그 문장에서 생략된 주어는 손님이 아니라 껌이니 '1000원입니다'라고만 하셔도 충분합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막상 점원의 환한 미소를 보고 나니 아침부터 괜히 

남의 기분을 망칠 것만 같아 용기가 쑥 들어가고 만다.

'사물 존칭'은 올바른 우리말 사용과 보급을 위해 설립된 국립국어원을 꽤 오랫동안 괴롭혀온 문제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은 "요금은 2000원이세요" "커피 나오셨습니다"처럼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 존칭 문장들을 보여준 뒤 응답자의 반응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조금 넘는 54.9%는 "경어(敬語)로 느끼지만 어색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경어로 느껴지며 어느 정도 자연스럽다"(19.3%), "매우 자연스럽다"(15.5%)는 답변도 34.8%에 이르렀다. 

엉뚱하게 사물을 높이고 있는데도 응답자의 3분의 1 정도가 부자연스러움을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 사물 존칭이 

우리말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사실 사물 존칭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어법(語法)상의 이유도 있다. 

우리말은 주어(主語)나 소유(所有)를 깐깐하게 따지는 언어가 아니다. 

'내 어머니'도 '우리 어머니'고 '내 집'도 '우리 집'이다. 

거기에 '학교 다녀왔습니다' '진지 잡수셨어요?'라는 식으로 주어를 생략해버리는 일도 다반사(茶飯事)다. 

반면 존댓말은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울 정도로 발달해 있으니 가끔은 누구를 높여야 할지 몰라서 헤매다가 

엉뚱하게 사물을 높이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게 사물 존칭이다.

하지만 사물 존칭이라는 '화재(火災)'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 그만큼 강력한 '발화(發火) 요인'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만난 편의점 점원처럼 사물 존칭은 대부분 서비스업 종사자와 손님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콜센터 직원이 친절하게 응답하지 않거나 쇼핑센터 직원이 손님에게 찡그리는 표정을 짓기라도 하면 곧바로 

항의 신고가 들어가는 곳이야말로 사물 존칭의 발생 지점인 것이다.


결국 과도하게 손님을 높여야만 한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 요즘 표현으로는 '감정노동'이 사물 존칭의 주범(主犯)이다. 

국립국어원이 아무리 국민 언어 의식을 조사하고 캠페인을 벌여도 사물 존칭이 사라지지 않는 건 

교육 부재(不在) 때문이 아니다. 슬프게도 '언어는 사회의 반영이자 거울'이기 때문이다.

고객 지상주의와 무한경쟁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떠넘기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흐를 즈음, 백화점 지하 식료품점 계산대에서 또다시 젊은 손님이 나이 든 점원에게 삿대질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사물 존칭은 캠페인만으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