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역사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1990년대 북한 붕괴론의 오류는 ‘경제 결정론’, 즉 경제가 무너지면 정권이 붕괴된다는 순진한 인과관계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성장률로 보면 붕괴 직전까지 소련은 미미하지만 성장을 하고 있었다. 소련의 붕괴는 심각한 소비재 부족과 비공식 경제활동으로 인해 사람들의 의식과 믿음, 행동이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쪽으로 바뀌었고 통치 권력 사이의 균열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가계소득 중 80%를 차지하는 북한의 시장경제 활동 수입은 북한 주민의 의식을 근저에서부터 변화시키고 있다. 탈북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탈북민을 대상으로 이들의 시장경제 지지도를 살펴본 연구에 따르면 북한 거주 시 시장 소득이 많을수록, 또 소득이 높을수록 사회주의 원리보다 시장경제 원리를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공산당원 여부, 이념 학습 정도는 사회주의 지지와 무관했다. 즉 시장경제 활동으로 주민의 의식은 시장경제 원리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하는 반면 공산당원·생활총화 등 북한의 이념 기제는 이를 막기에 무력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은 인간 본성이요, 역사의 법칙이다.

북한 체제의 변화 요인은 상층부에서도 발견된다. 이른바 와쿠라고 불리는 무역권은 다른 기업에 이를 임대만 해도 매출액 10%가량의 커미션을 받을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북한의 최고통치자가 결정하는 이 무역권을 둘러싸고 핵심 권력 간 암투가 치열하다. 2013년 말의 장성택 처형도 무역권을 독식하는 장성택을 제거함으로써 큰돈을 만질 수 있는 북한 최상층 권력이 반(反)장성택 연합전선을 편 결과다. 그러나 통치 엘리트 사이의 갈등은 정권 붕괴의 격발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도 이 경향의 예외가 되기는 어렵다.
김정은 정권 3년 동안 북한 경제가 양의 성장률을 보인 것은 사실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 성장은 북한 정권의 정치적·이념적 기반의 침식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결과다. 북한 주민의 시장활동, 중간 관료의 뇌물 수수, 북한 상층부의 무역권을 둘러싼 갈등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역사의 법칙이 북한에도 적용될 것임을 시사한다. 불행히도 북한 정권은 여전히 이를 알지 못하고 북한식의 경제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불행한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만약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면 이를 행복한 통일로 이끌 역량이 아직 우리에게 없다. 필자가 평가하건대 우리의 통일 역량은 기껏해야 D학점이다. 사회적 역량과 정치 역량은 F학점에 가깝고 경제와 외교 역량도 D학점 정도다. 이 역량을 제고하는 것이 급선무이나 그 가능성은 차치하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며 북한 경제를 개발함으로써 경제를 통해 북한 정권의 취약성과 도발성을 제어하는 것은 너무나 절박한 과제다.
2015년 을미년 새해는 역사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해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 관계에 새로운 시작을 이뤄 내려는 치열한 의지를 갖고 새해를 맞기 바란다. 북한 경제뿐만 아니라 경제사와 금융 전문가도 대통령과 정책결정자를 직접 만나 우리의 전문성과 역량을 총동원한, 창의적인 대북 경제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정상회담도 역사에 도움이 되면 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남북 모두 패자가 될 가능성만 커지기 때문이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