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슬픔도 진화했더라면

바람아님 2015. 1. 9. 09:56

(출처-조선일보 2015.01.09 황주리 화가)


망자를 씻기고 화장을 보기 좋게 해서 수의를 입혀 관에 넣어주는 분에게 어머니는 고맙다며 억지로 돈을 쥐여주셨다. 
충격을 받으실까 봐 어머니는 빈소에 남겨두고, 친지들 몇 사람과 함께 관에 들어가는 동생을 마지막으로 지켜보는데, 
염을 하는 젊은 양반이 말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니까 손도 만져보고 얼굴도 만져보세요." 
그러면서 그는 아까 어머니가 주신 돈을 어머니께는 말하지 마라, 
그래야 맘이 편하실 거라 하면서 떠나는 동생의 수의 깊숙이 집어넣어 준다. 
가는 사람의 노잣돈이 두둑해야 좋다면서.

떠나는 길은 길고도 멀지만 2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죽은 자를 보내는 방법과 과정은 놀랄 만큼 진화했다.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아버지의 벗은 몸을 움직이며 수의를 입힐 때 들리던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요즘은 염하는 방에 들어서면 이미 수의를 입고 있는 편안해 보이는 망자를 만나게 된다.

떠난 자를 보내는 남은 자의 슬픔도 그렇게 진화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시간 반 동안의 화장(火葬)을 마치고 수골실로 내려가 만난 동생은 죽 늘어놓은 몇 개의 하얀 뼈로 남았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성의껏 모시겠습니다" 하며 뼈들을 모아 기계에 넣는 젊은 여인의 모습이 너무 담담하여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그 젊은 나이에 타인의 뼈를 그리도 익숙하게 만지는 그녀의 담담한 얼굴은 백 살도 더 되는 듯 노숙함이 느껴졌다. 
동생의 뼈들을 고운 가루로 가는 시간은 찰나였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쓴 한 줄의 묘비명으로 남았다. 
"영화를 사랑하던 황정욱, 여기 잠들다. 너의 총명함과 따뜻함, 그 빛나는 유머를 영원히 잊지 못하리."


황주리 화가
황주리 화가

[일사일언] 슬픔도 진화했더라면

/황주리 그림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마치 내가 전쟁통에 어린 동생의 손을 놓친 것처럼 눈물이 났다. 
아버지 대신 전쟁에 나가 스무 살에 행방불명된 삼촌을 평생 잊지 못하시던 아버지 생각에 더 눈물이 났다. 
남의 일 같지 않은 가족사를 보다가 너무 슬퍼서 어쩌다 보이는 영화의 흠들은 그냥 넘어가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