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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콜베르의 '깃털'

바람아님 2015. 2. 9. 11:45

(출처-조선일보 2015.02.09  이성훈 파리 특파원)


	이성훈 파리 특파원 사진
최근 연말정산 파문과 관련해 2013년 세제개편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세금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이라고 했던 말이 다시 회자됐다. 

납세자들은 "나는 거위가 아니다"고 항변하고 있다.

원래 이 말은 프랑스 루이 14세 때 재무장관을 지낸 장 밥티스트 콜베르(1619 ~1683)가 한 것이다. 

한국의 상황 때문인지 콜베르를 국민의 고혈(膏血)을 교묘하게 빨아먹은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콜베르가 억울해서 관 뚜껑을 열고 나올 것 같다.

콜베르의 무덤은 파리 시내 생 퇴스타슈 성당에 있다. 

'프랑스를 부유하게 한 모든 세금의 창시자, 여기 잠들다'라는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모든 세금'은 모든 프랑스인을 의미한다. 

요즘 용어로 하면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와 비슷한 셈이다. 

앞서 그의 말은 '깃털을 빼는 것'이 아니라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에 방점이 찍혀 있다. 

급격한 세금 인상으로 국민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17세기 초 프랑스는 계속된 전쟁과 상류층의 사치로 나라 곳간이 텅텅 비었다. 

재무장관에 취임한 콜베르는 가장 먼저 세제 개혁에 나섰다. 

각종 명목을 붙여 면세 혜택을 누리던 귀족들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또 평민들의 세금도 지방정부나 귀족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직접 걷도록 해서 세금이 중간에 새는 것을 막았다.

콜베르는 세금을 늘리기 위해 경제력을 키우는 일에 집중했다. 

수입 관세를 높여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섬유 등 수출 산업을 육성했다. 

중상주의(重商主義)를 프랑스에서 '콜베르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는 영국·네덜란드와 경쟁하며 유럽의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콜베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다. 

더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좋은가,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은가' 고민하던 

그가 내놓은 해결책이 '늦게까지 일하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콜베르는 절대권력을 휘두른 루이 14세에게도 입바른 소리를 곧잘 했다. 

루이 14세는 권력 강화를 위해 베르사유 궁전을 하루라도 빨리 완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콜베르는 '국가 재정이 허락하는 한'이라는 조건을 붙이며 속도를 조절했다. 

대신 프랑스의 무역을 뒷받침할 해군력을 키웠다. 

루이 14세는 "나를 더 이상 슬프게 하지 말라"는 경고성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콜베르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루이 14세도 끝내 그를 내치지 않았다. 그의 충성심과 능력을 믿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사적으로 콜베르의 철학이 제국주의와 보호무역주의라는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평가도 있다. 

또 그가 죽은 후 프랑스 왕정은 전쟁과 향락에 다시 빠져들어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럼에도 그가 국부(國富)를 위해 한 일은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지금 우리 곁에도 콜베르 같은 소신과 비전을 가진 인물이 있는지 되돌아본다. 

만약 그런 사람이 뽑는 깃털이라면 국민은 아파도 기꺼이 참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