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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음모론, 이렇게 돌파하라

바람아님 2015. 2. 15. 03:23

(출처-조선일보 2015.02.14  어수웅 기자)

오바마 정부 규제정보국장 지낸 저자,  음모론 확산되는 SNS에 요원 투입
"세부 내용 지적하며 반박하라"   최소주의·중간주의 방법론 제시도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책 사진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캐스 선스타인 지음 | 이시은 옮김

21세기북스 | 344쪽 | 2만1000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 들끓는 음모론을 다뤘다거나 행동경제학의 고전 격인 '넛지'의 

저자 캐스 선스타인의 후속작이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작가가 대통령의 최측근 경험을 한 희귀한 인물이라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규제정보국장(OIRA·2009~2012)을 지낸 선스타인의 당시 별명은 

미국의 '규제 차르'(제정 러시아 때 황제의 칭호). 

시카고대학 로스쿨 교수로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다가, 음모론에 대응해야 하는 

정부 고위 관료로 신분이 바뀌었을 때 어떤 고백이 가능할 것인가. 

비록 그의 해명대로 음모론을 분쇄하는 직접 책임자는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선스타인은 절반만 정직했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는 음모론 분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생생한 실제 사례보다는 

음모론이 생겨나는 이유와 유포 과정의 이론적 분석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미국 정부의 음모론 대처 방식에 대한 보기 드문 언급이라는 점에서, 게다가 그 대처 방식이 

반(反)정부 집단에 대한 인지적 침투(cognition infiltration)라는 점에서, 예외적이고 문제적이다.

선스타인에 따르면 음모론이 발생하는 이유는 극단주의의 절름발이 인식(crippled epistemology) 때문이다. 

자신과 다른 관점이나 정보를 배제하고, 일치하는 내용만 받아들여 기존 입장을 강화하는 성향 말이다. 

절름발이 인식은 비합리적 성향 때문이 아니라, 적절한 정보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특히 고립된 집단이나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에게 자주, 강하게 일어난다. 선스타인 용어로는 '음모의 폭포효과'다. 

9·11 테러 당시 펜타곤에 돌진했던 게 아메리칸 항공 77편 여객기가 아니라, 미국 군산복합체가 발사한 미사일이라는 

주장도 그 대표적 예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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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음모론을 받아들이면, 그런 사건으로 인한 정서적 상태를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할 수 있다는 게 
선스타인의 설명이다. 이미 우리도 익히 경험한 바다. 천안함이 두 동강 났을 때, 세월호가 어처구니없이 가라앉았을 때 
부풀어 올랐던 음모론에도 마찬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어떻게 음모론에 대처할 것인가. 
정부 입장에서의 딜레마는 음모론을 무시하건 반박하건 나름의 위험과 비용이 따른다는 점이다. 정부의 묵묵부답은 
음모론의 인정이라 오해받기 쉽고, 반대로 적극적으로 반박하면 세력 약하던 음모론의 존재를 크게 부각시킬 우려가 있다.

선스타인은 무조건적인 '노코멘트'나 부정보다는, 세부 내용을 지적해가며 루머를 반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중 가능한 전술 한 가지가 인지적 침투다. 정부 요원이 위험한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에 참여해, 
음모론의 진실성에 관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려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퍼뜨린다는 것. 
요원들은 자신의 신분을 공개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당연히 각 옵션에는 각기 다른 위험과 보상이 따른다. 
물론 인지적 침투는 터무니없는 외눈박이 신념에 갇혀 있는 집단을 상대로 할 경우로 제한한다.

이 책이 던지고 있는 '위험한' 질문이 음모론에만 갇혀 있지는 않다. 동물의 권리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결혼할 권리와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종교 집단 내에서의 성차별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등의 문제가 도발적으로 펼쳐진다.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특히 제10장 최소주의와 제11장 중간주의의 정독(精讀)을 권한다.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듯 보이는 심각한 갈등 속에서, 과연 어떻게 함께 대화하고 살아가며 일하고 통치할 수 있느냐에 대한 
현명한 방법론이다. 얼핏 이 둘은 사촌지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소주의의견의 불일치가 심한 거창하고 이론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당면한 특정 사안만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고, 중간주의는 최소주의와 달리 문제를 미결 상태로 내버려두기를 바라지 않고 핵심을 잡아 타협을 이뤄내자는 
최대 공약수의 선택이다. 의사결정에 드는 비용과 시행착오에 대한 비용을 고려해서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원제 Conspiracy Theories and Other Dangerous Ide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