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음악칼럼 285

[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회의는 춤춘다

중앙일보 2023. 3. 28. 00:38 매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빈 신년음악회의 프로그램이 왈츠 일색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 신년음악회만큼이나 빈 왈츠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1814년에 개최된 빈 회의였다.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메테르니히의 주도 아래 장장 10개월 동안이나 계속된 이 회의에는 90개 왕국과 53개 공국 대표들이 참석했다. 회의가 열리는 동안 회의장으로 쓰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인 쇤부른궁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메테르니히는 이 호화로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에서 매일 최고급 와인과 흥겨운 왈츠를 곁들인 초호화판 무도회를 열었다. 빈 회의에서의 왈츠는 회의의 실체를 잊게 만드는 일종의 눈속임이었다. 왈츠 선율은 경쾌하고 달콤하지만 정치는 전혀 ..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54] 모럴 해저드

조선일보 2023. 3. 20. 03:01 Pink Floyd ‘Money’(1973) 돈 앞에서 인간의 도덕은 무장해제된다. 경기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미국 정부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이 이미 파산했고 크레디스위스(CS)까지 유동성 위기에 몰리며 금융발 불안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 은행의 경영진은 파산이 공식화되기 전에 보유 주식들을 대규모로 처분했음이 드러났다. 다시 돌고 돌아 ‘모럴 해저드’다. SVB는 파산 후 압류 직전까지 임직원에게 연간 보너스를 지급했고 돈을 챙긴 베커 회장은 파산 사흘 뒤 하와이 마우이 섬으로 유유히 휴양을 갔다. 딱 오십년 전의 이 노래가 더 생생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https://v.daum.net/v/2023032003014..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53] 3이라는 숫자

조선일보 2023. 3. 13. 03:00 Commodores ‘Three Times a Lady’(1978) 동서양을 막론하고 ‘3′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의미한다. ‘천-지-인’이라는 동양의 삼재(三才) 사상이 그러하고 삼위일체를 얘기하는 성경이 또한 그렇다. 우리나라의 회사나 가게 이름에도 이 석삼자가 들어간 경우는 부지기수다. 아내를 너무 사랑한 한 남성이 이제 침대에서 깨어난 아내를 포옹하며 이렇게 말했다. “You are indeed three times a lady.” 이 장면을 지켜본 어린 아들은 나중에 뮤지션이 되어 팝 역사에 남은 명곡을 만들어 부른다. 그 꼬마는 마이클 잭슨과 경쟁했던 70~80년대의 수퍼 스타 라이오넬 리치다. https://v.daum.net/v/2023031303..

신영옥 동심초 속 당나라 기녀의 봄맞이 [삶과 문화]

한국일보 2023. 3. 12. 22:00 가곡 '동심초'를 좋아하게 된 것은 소프라노 신영옥을 통해서였다. 1995년 발매된 신영옥의 음반 '보칼리제'에는 두 곡의 우리 가곡이 실려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성태 작곡 동심초였다. 원작자는 8, 9세기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이자 기녀인 설도(薛濤). 동심초의 가사는 그의 시 춘망사(春望詞) 총 4수(首) 가운데 제3수를 번역한 것이었다. 예상 밖이라고 한 것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거의 봉쇄되었던 전근대 동양 사회에서 예외 중 하나가 기녀로서 시작(詩作) 활동을 하는 것이긴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조선시대 중기에 들어와서야 그러한 활동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설도는 그보다 훌쩍 앞선 시대에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가곡 동심초의 모태가 된 춘망사에서 '춘망'은 문헌..

공연 중 사라지는 연주자들 … 휴가 보내달라는 '하이든의 묘책'이었다

한국경제 2023. 3. 9. 16:59 김수현의 마스터피스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 바이올리니스트 두 명만 남고 줄줄이 자리 떠나는 단원들 지휘자마저 나중엔 자취 감춰 매일 열린 궁정 음악회에 지쳐 향수병까지 앓는 단원들 보며 연주 중간에 자리 뜨게끔 작곡 단원들의 고단함 우회적 표현 감미로운 선율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단원들이 연주를 하다 말고 하나둘 무대를 빠져나간다. 현악기 연주자, 관악기 연주자 가릴 것 없이 줄줄이 자리를 뜬다. 단원이 절반 정도 빠져나갔을 즈음에는 급기야 지휘자마저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무대에는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만 남게 된다. 그들만 끝까지 남아 가냘프고 처량한 바이올린 선율로 무대를 마무리한다. 작곡가 존 케이지의 피아노곡 ‘4분33초’와 같은 실..

[유윤종의 클래식感]덴마크 외교관이 모차르트 전기작가 된 사연은

동아일보 2023. 3. 7. 03:03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이 1797년 하숙을 옮겼을 때 그는 36세의 오스트리아 주재 덴마크 대사 대리였고 4년째 빈에서 일하고 있었다. 새 하숙집에는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인 과부 여주인과 두 아들이 있었다. 한 해가 지나 니센 대사는 하숙생 생활을 면하게 된다. 두 아이의 ‘아빠’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콘스탄체와 니센 부부의 의지가 싹을 틔워 탄생한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는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1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피셰르 아담의 지휘로 내한공연을 연다. 모차르트의 교향곡과 레이 첸이 협연하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https://v.daum.net/v/20230307030341618 [유윤종의..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52] 이 세상의 절반

조선일보 2023. 3. 6. 03:01 John Lennon ‘Woman’(1980) 1980년 5년간의 침묵을 깨고 의욕적으로 신작을 준비하다 정신이상을 지닌 이의 총을 맞고 사망한 존 레논의 유작이자 마지막 앨범이 된 ‘Double Fantasy’에 실린 이 노래는 들릴 듯 말 듯한 다음의 독백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세상의 절반을 위해(For the other half of the sky)”. 1960년대의 아들인 존 레논은 다른 서구의 진보적인 청년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그러했듯 중국 공산혁명의 주역인 마오쩌둥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이 짧은 한 줄은 전통적인 유교적 사고를 단숨에 뒤집는 마오의 발언, ‘하늘의 절반은 여성이 받치고 있다’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이다. https://v.daum.n..

‘파파’ 하이든, 유쾌한 마음으로 행복한 선율을 빚다

중앙SUNDAY 2023. 3. 4. 00:22 민은기의 클래식 비망록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18세기 말 유럽에서 가장 명성이 높았던 두 작곡가다. 활동했던 시기와 지역이 같을 뿐 아니라 주력했던 음악 분야도 관현악과 오페라로 같다. 그래서 이 둘은 항상 비교의 대상이다. 결과는 당시나 지금이나 모차르트의 완승이었지만. 사실 하이든으로서는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나 역사적 업적 역시 웬만한 음악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출중했으니 말이다. 음악사의 최고 장르인 교향곡 뿐 아니라 현악 4중주의 틀을 확립시켜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현악 4중주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다. 같은 시공간에서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면 서로를 싫어하거나 질투했을 만도 한데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