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43] 솔제니친과 사회생물학

바람아님 2013. 12. 10. 21:56

(출처-조선일보 2013.12.10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개미제국의 발견'을 읽은 독자라면 알고 있겠지만, 내가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하게 된 배경에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있었다. 지금은 과학자로 살고 있지만 고등학생 시절 나는 속절없이 신춘문예 열병을 앓던 문학청년이었다. 1970년 노벨 문학상 발표가 나기 무섭게 출간된 솔제니친 전집에서 '수용소 군도'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어 내려가던 나는 책의 뒷부분에서 '모닥불과 개미'라는 짤막한 수필을 만났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썩은 통나무 한 개비를 집어 던졌다. 그러나 미처 그 통나무 속에 개미집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통나무가 우지직 타오르자 별안간 개미들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오며 안간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통나무 뒤로 달리더니 넘실대는 불길에 휩싸여 경련을 일으키며 타죽어 갔다. 나는 황급히 그 통나무를 낚아채서 모닥불 밖으로 내던졌다. 다행히 많은 개미들이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가까스로 그 엄청난 공포에서 벗어난 개미들은 방향을 바꾸더니 다시 통나무 둘레를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많은 개미들이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통나무를 붙잡고 바둥거리면서 그대로 거기서 죽어가는 것이었다."

이 같은 일개미들의 자기희생, 즉 이타주의는 바로 사회생물학의 핵심 질문이다. 내가 이 질문에 답하려 하버드대에 머물던 내내 미국으로 망명한 솔제니친은 바로 옆 버몬트 주에 살았다. 1994년 나는 15년간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고, 같은 해 그도 러시아로 귀환했다. 억지로 내 삶을 그의 삶에 엮으려는 나의 유치한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일은 1918년 그가 태어난 날이다. 할아버지가 늦게 신고하는 바람에 호적에는 내 생일이 이듬해 1월로 적혀 있지만 거슬러 계산해보면 실제 내 생일도 12월 11일인 걸로 나온다. 설령 이 추산이 잘못되었더라도 나는 위대한 작가 솔제니친과 같은 날 태어났노라 끝까지 박박 우기련다.



불로그 내 저자의 유사한 주제 - [110] 이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