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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94] 생태 재앙

바람아님 2013. 12. 10. 09:53

(출처-조선일보 2011.01.17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새해 벽두부터 세계 곳곳에서 날아드는 동물들의 떼죽음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새해 첫날에는 미국 아칸소주에서 무려 1000마리의 찌르레기가 죽어 떨어졌고, 8일에는 루마니아에서도 수십 마리의 찌르레기가 어느 공원 근처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게 발견되었다. 시카고 인근 미시간호 연안에는 전어 수천 마리가 떠밀려왔고, 영국 켄트 지방의 해안에는 수만 마리의 게와 불가사리의 사체가 널브러졌다.

성급한 사람들은 앞다퉈 지구의 종말을 운운한다. 하지만 이런 생태 재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출애굽기 7~11장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수 있도록 여호와가 이집트에 내린 각양각색의 생태 재앙들이 묘사되어 있다. 성경이 무릇 역사 기록이라면 이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재앙들일 가능성이 크다. 엄청난 수의 개구리들이 강과 운하에 넘쳐나며 떼죽음을 당해 악취가 진동하고, 집집마다 파리 떼가 들끓고, 메뚜기 떼가 나타나 난데없는 우박으로 이미 쑥대밭이 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죄다 먹어 치웠다. 또한 "생축 곧 말과 나귀와 약대(낙타)와 우양(소와 양)"에 심한 악질(惡疾)을 내리고, 급기야는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을 죽여 "전국에 전무후무한 곡성"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도 툭하면 강과 호수의 물고기들이 집단으로 폐사하여 둥둥 떠오르고 천연기념물인 독수리마저 심심찮게 떼죽음을 당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묵시록을 들먹이며 드디어 하느님이 우리를 벌하시는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이게 어쩌면 우리 스스로 저지른 짓은 아닐까 짚어봐야 한다. 일단 조류독감을 의심하며 부검해본 결과 루마니아의 찌르레기들은 농부들이 포도주를 걸러내고 버린 찌꺼기를 먹고 알코올 중독으로 죽은 것이란다.

최근에 번역된 '식량의 종말'의 저자 폴 로버츠는 지금 우리나라 전역을 휩쓸고 있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의 원인을 대규모 공장식 집단 사육에서 찾는다. 바이러스의 공격이야 늘 있는 것이지만 이 같은 대규모 발병은 대체로 우리 인간의 탐욕이 자연생태계의 섭리를 거스르며 자초한 일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다 했다. 자연은 끝내 중용의 덕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