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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24]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바람아님 2013. 12. 9. 09:41

(출처-조선일보 2011.08.19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영국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다른 박물관들처럼 예술품 컬렉션의 소장이나 전시가 아니라 영국의 디자인을 개선한다는 아주 특이한 목적을 위해 설립되었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선구자로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제조업 분야에서 앞서 나갔지만, 19세기 중반에 이르면서 점차 이웃 국가들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특히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뒤처져간다는 점이 문제였다. 1836년 하원 특별위원회의 조사 결과 영국의 디자인 교육이 부적절하며, 주변국들, 특히 프랑스독일의 디자인 수준이 영국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영국 정부는 국립 디자인 학교를 설립하여 대처하고자 했다. 로열 아카데미 안에 문을 연 이 학교는 교육 목적을 위해 많은 고전 미술품과 당대의 장식예술 작품들을 수집하여 박물관을 꾸몄다.

런던 만국박람회(1851)의 조직자 중 한 명이었던 헨리 콜이 1852년에 교장이 된 후 "디자이너를 교육하고 제조업자들에게 영감을 주며 일반 대중의 취향을 개선한다"는 목적을 내걸고 학교와 박물관 운영을 크게 개선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이었던 앨버트 공이 이 계획에 찬성하여 만국박람회 전시품을 토대로 새로운 전시관을 열도록 했고, 더 나아가서 예술과 과학을 산업 발전에 이용할 수 있는 기관으로 확대하고자 했다. 각종 산업 디자인 제품들을 수집하여 일반인에게 전시하되, 이것이 '폐품 수집' 수준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박물관 내에 강의를 개설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아오도록 저렴하게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을 여는 세심한 배려도 했다.

그들은 "가장 많이 아는 자가 가장 창의적이 된다"자신들의 생각을 중산층과 노동계급 상층으로까지 확산시키려고 노력했다. 노동자들이 술집에서 돈을 탕진하는 대신 가족들과 함께 박물관에 와서 교양을 쌓으며 즐길 수 있는 '인민 궁전'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이상이었다. 이렇게 하면 당시 유럽 대륙을 휩쓸던 '혁명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책이 되며, 또 방문객들에게 멋진 물품들을 보여줌으로써 상품 수요를 창출한다는 생각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 박물관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제조업 발전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디자인 문제가 제기된다. 국가 주도로 디자인 수준을 높이는 것이 꼭 좋은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 방향을 찾으려고 노력한 영국 사례는 진지하게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