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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26] 수영 테스트

바람아님 2013. 12. 11. 13:22

(출처-조선일보 2011.09.02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하버드 대학의 중앙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와이드너(Widener) 도서관에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이 도서관은 하버드 대학 졸업생인 해리 와이드너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그는 필라델피아의 거부였던 자기 아버지와 함께 타이태닉 호를 타고 여행하다가 두 사람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다. 과부가 된 그의 어머니가 애서가(愛書家)였던 아들을 기리기 위해 하버드 대학에 거금을 기부하여 도서관을 짓게 했다. 단, 모든 하버드 대학 학생들이 자기 아들과 같은 비극을 맞지 않도록 졸업 전에 반드시 수영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을 기부 조건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꽤 유명해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거론하지만, 실제로는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우선 와이드너 도서관이 1915년에 완공되었지만 하버드 대학에서 1학년 신입생들에게 수영 테스트를 시행한 것은 1920년대 이후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사실 해리 와이드너가 꼭 수영을 못해서 죽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망망대해에서는 헤엄쳐 갈 곳이 없으며, 사람들은 대개 차가운 물속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 많은 대학에서 수영 테스트를 실시한 것은 1차대전 시기에 적십자사가 모든 미국 국민에게 수영을 가르치자는 운동을 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이 더 이상 졸업 필수 요건으로 수영 능력을 요구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이 요건을 아주 엄격하게 지켰다.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자를 역임할 정도로 박식한 인물이었던 모티머 아들러 박사는 정작 컬럼비아 대학 학부 졸업에 실패했다. 4년 과정을 3년 만에, 그것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지만 수영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60년이 지난 후에야 그는 졸업 후에 수영을 배웠다는 사실을 대학 측에 알려서 명예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워싱턴 대학에 풋볼팀이 없는 이유는 어떤 거액 기부자의 아들이 풋볼을 하다가 죽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대학 관련 이야기 중에는 허황한 전설들이 많다. 그런 전설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 아니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동해안에 캠프를 갔을 때 제자들이 나를 바다에 빠뜨리는 바람에 오랜만에 바다에서 시원하게 수영을 했다. 그런데 정작 많은 학생은 물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뙤약볕 내리쬐는 모래사장에서 서성대고만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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