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503/24/htm_2015032404826a010a011.jpg)
검정·빨강·노랑 따위를 번지듯 칠한 그림일 뿐인데 마음을 흔든다. 마크 로스코(1903~70) 회고전이 23일 개막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6월 28일까지 열린다.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 50점의 외부 전시다.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그의 초기 반구상 회화부터 전성기의 시그램 빌딩 설치를 위한 벽화 스케치, 그리고 마지막 붉은 그림까지 로스코의 대표작을 망라했다. 사람 키만한 추상화를 조용히 감상할 수 있도록 구획을 지어 의자를 놓아두는 등 전시장 분위기는 차분하다. 한적한 시간에 혼자 그림을 마주하길 권한다.
로스코는 1903년 러시아 드빈스크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박해를 피해 열 살 때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예일대를 중퇴한 20대 중반에 미술 수업을 받았고 마흔을 넘긴 1940년대 후반에야 색면 추상화를 선보였다. 5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 대표 중 한 명으로 참가했다.
로스코는 “그림은 사람과 교감하면서 존재하는 것. 감상자에 의해 확장되고 성장한다. 때문에 그림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며 관객의 경험을 중시했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경험한 것과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휴스턴에 성물 대신 자신의 추상화를 전시한 로스코 채플을 남겼다. 작품을 보며 영혼의 안식을 느끼고 자기 공명을 하는 곳으로, 미술의 종교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비극·황홀경·파멸 등을 키워드로 한 그의 추상 화면은 점점 크고 어두워졌다. 로스코는 70년 뉴욕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내의 로스코전은 2006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연 ‘마크 로스코: 숭고의 미학’ 이후 9년 만이다. 비싼 작품값,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지 않아 아직 소멸하지 않은 저작권료, 낮은 대중적 인지도 등이 로스코전의 걸림돌이다. 로스코의 ‘오렌지·레드·옐로’는 201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690만 달러(약 968억원)에 팔렸다. 전시작의 총 보험가액은 2조5000억원이다.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에 미술계에서는 “정말 하는 건가?”, 미술계 밖에서는 “로스코가 누구지, 저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전시를 연 기획사가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이라는 부제를 내세우고, 혜민 스님과 대중철학자 강신주의 강연과 해설 등 유명인 마케팅에 매달리는 이유다. 잡스의 여동생 모나 심슨은 뉴욕타임스에 오빠를 추모하는 글을 기고하면서 “그의 생에 마지막 해, 잡스는 처음 알게 된 로스코에게 큰 관심을 가졌다. 로스코에 대한 책을 꼼꼼히 읽으며 미래의 애플 캠퍼스 담벼락에 어떤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지 깊이 생각했다”고 썼다.
코바나컨텐츠의 김민선 큐레이터는 “내셔널 갤러리의 보수 공사로 소장품을 해외 대여하게 됐다. 국내 대관 전시는 인상파 일색이라는 통념에 도전하고 싶어 3년간 준비했다”고 말했다. 전시에 즈음해 프랑스의 예술저술가 아니 코엔 솔랄의 『마크 로스코-슬픔과 절망의 세상을 숭고한 추상으로 물들이다』(다빈치), 강신주의 『마크 로스코』(민음사)도 출간됐다. 성인 1만5000원, 청소년(만 13∼18세) 1만원. 02-532-4407.
권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