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생활속사진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축제로 느끼는 옛 정감

바람아님 2015. 4. 22. 10:01

연합뉴스 2015-4-20

 

고창·가파도 청보리밭축제 등에 추억의 초록빛 물결

 봄바람 부는 논과 밭에 펼쳐진 푸른 보리밭. 문득 훈향이 스치는가 싶더니 종달새 울음이 귀청을 간지럽힌다. 이에 뒤질세라 들려오는 보리피리 소리. "삐~익! 삐~익!"

한겨울 추위를 굳건히 이겨내고 힘차게 솟아나는 보리는 서민의 고단한 삶과 어기찬 생명력을 상징했다. 헐벗고 배고팠던 궁핍의 시대. '보릿고개'라는 말처럼 춘궁기가 되면 보리가 그 힘겨움을 함께 견뎌내주는 동반자였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가곡 '보리밭'은 언제 들어도 애틋하다. 고독과 인고, 헌신과 위안이 깊게 스며 있는 감성의 노래.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그 시절. 꽁꽁 얼어붙은 눈속에서 어기차게 살아난 보리는 가을에 벼가 익을 때까지 우리 조상들의 배를 채워주곤 했다.

봄이면 들녘에 초록빛 물결로 출렁이고 산언덕 다락논에서 파릇파릇 고개를 내밀던 보리가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다. 궁핍의 시대를 졸업해서인가. 하지만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그 수수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추억의 그리움과 편안함을 찾아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리고 곳곳의 보리밭들은 속깊은 포용력으로 이들을 따뜻히 안아준다. 보리밭축제는 잃어버린 추억과 감성을 다시 느껴보게 하는 만남의 장이다.

해마다 4월과 5월이면 보리를 소재로 하는 축제가 열려 상춘객의 발길을 불러 모은다. 고창 청보리밭축제와 제주 가파도청보리축제, 군산 꽁당보리축제, 영광 찰보리문화축제가 그것이다. 슬로우걷기축제가 열리는 완도 청산도에 가도 푸른 물결의 보리밭을 만날 수 있다.

보리축제의 대표격은 역시 고창 청보리밭축제다. 고창군 공음면 학원관광농장 일대에 끝없이 펼쳐진 보리밭은 봄기운을 만끽하고 옛 추억을 떠올리기에 딱 좋다. 매년 수십 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해 푸른 보리밭 샛길을 걸으며 삶의 여유를 되찾아 돌아간다.

지난 18일 시작한 제12회 축제는 5월 10일까지 이어질 예정. 보리강정 만들기, 보리피리 불기와 같은 토속행사를 즐길 수 있다. 이와 함께 청보리밭 꽃마차 타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과 보리밭 속 포토정원 등 볼거리도 다양하게 마련됐다.

남녘의 바다를 건너 제주에 가도 초록의 청보리밭과 그 축제를 만날 수 있다. 지난 11일 서귀포시 대정읍의 가파도에서 개막한 제7회 가파도청보리축제가 그것이다. 섬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는 청보리밭은 멀리 보이는 산방산과 주변 바다와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축제는 역시 5월 10일까지 계속된다.

5월에 막을 여는 보리밭축제로는 제10회 군산 꽁당보리축제(1일-5일)와 제4회 영광찰보리문화축제(8일-9일)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미성동 청보리밭에서 열리는 군산꽁당보리축제는 '오월 청보리밭, 왁자지껄 추억여행'을 주제로 가족단위 방문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군산 들녘에서 생산된 친환경 흰찰쌀보리를 널리 알리려는 취지도 담겼다. 역시 '보리와 함께하는 추억여행'을 주제로 내세운 영광찰보리문화축제에서는 보리베기 경연대회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즐길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가곡 '보리밭'은 그 탄생과 애창 과정이 영락없이 보리의 삶을 닮았다 싶다. 친구 사이였던 시인 박화목과 작곡가 윤용하는 한국전쟁 때인 1951년 이 노래를 만든다. 박화목이 두고 온 고향의 보리밭을 떠올리며 시 '옛 생각'을 짓자 윤용하가 사흘 만에 제목을 '보리밭'으로 바꿔 작곡한 것.

하지만 이 노래가 대중에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20여 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1953년 초연됐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1974년 고교 교과서 등에 실리면서 대중적 명성을 얻게 된 것. 길고 긴 겨울을 외롭게 견뎌내고 난 뒤 푸르른 봄날에 그 강인한 생명력을 맘껏 펼쳐내는 보리의 일생을 닮았다. 언제 다시 부르고 다시 들어도 뭉클한 애련함이 묻어나는 이유다.

"옛 생각이 괴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 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 노을 긴 하늘만 눈에 차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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