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이광조의 '나들이'

바람아님 2015. 5. 5. 10:53

[중앙일보] 입력 2015.05.04

 















중앙일보 피플면에 연재하는 '요즘 뭐하세요'란 코너의 인터뷰어로 이광조 선생이 스튜디오로 온다고 했다. 꽤 오랫동안 그의 노래, 그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기다리며 그의 노래를 들었다. 예전에 한창 좋아했던 곡 ‘나들이’를 들으며 흥얼거렸다.

‘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과 밤새워 얘기하리라.
산에는 꽃이 피어나고 물가에 붕어 있으면 돌멩이 위에 걸터앉아 그곳에 쉬어가리라.
(중략)
가다 가다가 지치면 다시 돌아오리라.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 그대의 정든 품으로‘

볼륨을 높였다. 옆 스튜디오의 후배가 음악 소리를 듣고 찾아왔다. 가수가 누구며 제목이 뭐냐고 묻는다. 한 번 더 들려 달라고 한다. 삼십대 초반의 후배에겐 처음 듣는 노래일 테지만 뭔가 끌림이 있었던 게다.

다시 듣는 중, 이광조 선생이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반백의 머리,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물들었다.

반가움 담아 인사를 건넸더니 쑥스러워 안절부절 못하며 한마디 한다.

“십 수년만의 인터뷰예요. 사람을 잘못 만나요.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도 겁나고…. 참 내성적이죠.”

의외의 말이다.

“예전에 ‘검은 커튼이 드리운’으로 노래를 시작하면 여생 팬들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던 때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그러셨어요?”

“ 말도 마세요. 관객들 눈도 못 마주쳤어요. 얼굴은 애써 태연한 척하고 목 밑으로는 바들바들 떨며 노래했었죠. 두근두근 콩닥콩닥 난리가 아니었죠. 딱 백조였어요. 이겨내야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의 입에서 나온 고백 같은 얘기, 전혀 짐작도 못했던 얘기다.

그리고 또 이어진다.

“직업을 잘못 선택했나 봐요. 이정선이가 음악작업을 좀 도와 달라고 해서 코러스를 해준 인연으로 시작되었죠. 미대생이 가수를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죠. 친구를 잘못 만나 구렁텅이에 빠져든 겁니다”며 웃는다.

그간 미국에 있었다고 했다. 잠깐씩 다녀가면서 간간이 음악 프로에 얼굴을 내비치긴 했지만 떠나 있은 게 11년이라 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샌프란시스코로 갔어요. 사람에 치이고 노래에 지쳤어요.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온다 간다 말도 없이 그렇게 떠났습니다.”

우리는 그를 ‘오늘 같은 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등의 히트곡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로만 기억한다. 오늘 그 가수는 그것이 그리도 견디기 힘들어 떠났노라 고백을 한다.

“ 노래 부르는 일은 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식당 일, 집 수리공 일을 해봤습니다. 앓아 누웠습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조금씩 먹고 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살던 동네가 너무 좋았어요. 해변에 매일 나갔어요. 내 바위가 있었어요. 거기에 앉아서 멍하니 오가는 파도를 바라보다가 혼자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개 분변만 가득한 황량한 해변이 제게 큰 영감을 줬어요.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를 느꼈습니다.”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떠남으로써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이었다. 계약에 묶이는 속박이 싫어 소속사와 매니저조차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온 이유는 뭘까? 영주권까지 포기했다고 했다. 어머님이 보고 싶어서 온 거라 했다. 무엇보다 어머님께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를 기다리며 들었던 ‘나들이’가 머리에 맴 돌았다.

‘발길 따라서 걸었다. 바닷가 마을, 돌멩이 위에 걸터앉아 쉬어가리라, 그리고 가다 가다가 지치면 다시 돌아오리라.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 그대의 정든 품으로’

결국 ‘이광조의 나들이’를 이야기한 것 같았다. 삶이 나들이다. 사진으로 그의 ‘나들이’를 표현하고 싶었다. 실로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기에 쭈뼛쭈뼛 어찌할 바를 모른다. 선풍기를 틀었다. 그냥 바람을 느끼시라 했다. 샌프란시스코 해변의 바람은 아니지만 선풍기 바람으로 헝클어지는 머리, 그나마 바람 속에서 편안해 보였다.

5월 8일, 서울 라움아트센터에서 단독콘서트를 한다고 했다. 공연하는 모습이 꿈에 나 올 정도로 긴장이 된다고 했다. 몸살로 살까지 빠졌다 했다. 그리고 곧 정규 앨범도 출시할 것이라 한다.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 그대의 정든 품’, 그가 돌아온 정든 품이 팬들의 품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