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5-12
일제강점기 인위적으로 훼손되기 이전의 신라 서봉총(瑞鳳塚) 금관은 본래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립중앙박물관이 서봉총 금관에 달린 곡옥이 떨어지고 양대(梁帶·머리에 쓸 수 있도록 테두리 안쪽에 십자로 붙여 놓은 금띠)가 엉뚱한 데 붙여진 사실을 최근 발견한 가운데 관련 전시회를 열어 눈길을 끈다.
1926년 경북 경주시에서 발견된 서봉총은 스웨덴의 아돌프 구스타프 황태자가 봉황이 달린 금관을 발굴했다는 뜻에서 ‘서전(瑞典·스웨덴)’의 ‘서(瑞)’자와 봉황의 ‘봉(鳳)’자를 따서 명명됐다. 보물 제339호로 지정된 서봉총 금관은 봉황 장식을 갖춘 유일한 신라 금관이다.
신라 금관 중 유일하게 봉황 장식이 달린 서봉총 출토 금관. 이 금관에 들어간 금실 가운데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왼쪽)은 ‘늘여 빼기’ 흔적이 보이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급조된 금실(오른쪽)은 표면이 매끈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2일 찾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과학으로 풀어보는 서봉총 금관’ 전시는 금관의 훼손 흔적을 과학적 기법을 동원해 밝혀내는 과정을 한눈에 보여줬다. 1926년 서봉총 출토 직후 찍힌 금관 사진과 실물 비교가 결정적인 단서였지만 본격적인 검증은 ‘X선 형광 분석(XRF)’을 통해 가능했다.
전시장 오른편으로 눈길을 돌리면 XRF를 통해 일제강점기 이후 급조된 금실이 금관의 어느 부위에 사용됐는지를 사진으로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신라시대 때 사용된 금실의 순도가 17∼19K로 나중에 만들어진 금실(23∼24K)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사실에 착안한 결과다. 이는 형광 X선을 유물에 쏘아 비파괴 분석으로 성분을 파악할 수 있는 XRF 장비 덕분에 알아낼 수 있었다.
금실의 제조기법 차이도 결정적이었다. 신라시대 금실을 확대 촬영한 고해상도 사진은 금박을 큰 구멍에서 작은 구멍으로 통과해 금실을 뽑아내는 ‘늘여 빼기’ 흔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반면 나중에 만들어진 금실의 표면은 사출 방식으로 제작돼 늘인 자국 없이 매끈하다.
일제강점기에 덧붙여진 금실의 위치는 금관의 원형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 실제로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원형을 추정 복원한 금관 재현품이 전시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복원된 금관은 관테에서 떨어져 나간 4개의 곡옥을 다시 붙이고 양대를 원래 위치에 고정한 모습이었다. 복원된 금관을 머리에 쓰면 꼭대기에 있는 봉황 장식이 정확히 정수리 위에 놓이게 된다.
이 밖에 실제 금관(보물 339호)을 비롯해 금 허리띠 장식, 굵은 고리 귀걸이, 은그릇 등 57점의 서봉총 유물이 함께 전시돼 있다. X선을 이용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금귀고리의 제작기법을 규명한 전시물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음 달 21일까지 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테마전시실에서 관람할 수 있다. 02-2077-9459
김상운 기자
'生活文化 > 그때그일그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카소 '알제의 여인들' 1967억원..최고가 기록 (0) | 2015.05.14 |
---|---|
美애리조나 다락방에서 외계인 사진 발견 (0) | 2015.05.13 |
트럭에 실려가는 위안부 촬영한 日병사 "대부분 조선여성 강제동원" 설명 적어 (0) | 2015.05.11 |
4만년 전 '세계서 가장 오래된 팔찌' 공개 (0) | 2015.05.10 |
1억 3000만년 전 역대 최고(最古) 현대 새 조상 화석 발견 (0) | 2015.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