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장미여관’이 상의 탈의한 까닭

바람아님 2015. 5. 19. 10:15

[중앙일보] 입력 2015.05.18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탑밴드2’의 첫 등장부터 파격이었다. 밴드 이름부터 희한했다. 바로 ‘장미여관’이다. 국적불명의 외래어 조합이나 그럴싸한 언어유희의 밴드 이름이 대세인 시대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원초적 이름이다.

무대 의상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눈에 확 띄는 장미 문양이 가슴팍에 떡 하니 새겨진 정장, 좋고 나쁨을 떠나 단박에 눈길을 끄는 무대의상이었다.

그들의 노래 ‘봉숙이’를 들으며 웃다가 쓰러질 뻔했다. 보사노바 풍의 리듬에 늑대 같은 남자의 마음을 대놓고 쓴 가사, 그마저도 원단 경상도 사투리였다.

‘봉숙아. 택시는 말라 잡을라고. 오빠 술 다 깨면 집에다 태아줄게. 저기서 술만 깨고 가자. 딱 30분만 셔따 가자. 못 드간다. 못 간단 말이다. 이 술 우짜고 집에 간다 말이고. 묵고 가든지 니가 내고 가든지’

처음 TV에서 이 노래를 듣고 다음날 웬 종일 들으며 혼자 낄낄대었다.

무명이었던 인디밴드는 하루아침에 세상의 중심에서 단박에 화제가 되었다.

하루 종일 낄낄대며 그들의 노래를 찾아서 들었든 것이 나뿐만 아니었던 게다.

당시 가요 담당 기자가 발 빠르게 이들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간 워낙 무명이었으니 다른 인터뷰 참고자료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의 첫 앨범 표지 사진(누드에 긴 가짜 수염으로 중요 부분을 가렸다)만 봐도 재미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했다.

시끌벅적하게 다섯 사내가 스튜디오에 등장했다.

기대했던 무대의상이 아닌 평상복이다. 악기도 없다. 혹시나 촬영을 도와 줄 스타일리스트가 따라왔을까 하여 뒤를 살폈다. 아무도 없다.

“설마 입고 온 복장 그대로 사진 찍으려고 하는 건 아니죠?”라고 물었다.

“사진 찍는 줄 모르고 그냥 왔습니더” 라고 무심하게 답한다. 그 답이 내겐 청천벽력 같다.

하긴 신문 인터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진을 찍는 줄 모르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험 없는 이들에게 의상이나 악기를 준비하라고 통보를 못한 나의 잘못이다.

사진을 찍기도 전부터 내 머리는 복잡해졌다. 어찌 해결할까 고민하다 후다닥 나가서 무작정 장미를 사들고 왔다. 이놈들이라도 들고서 어찌해볼 심산이었다.

장미 한 송이씩 나눠 줬다.

난생 처음 시커먼 늑대들에게 장미를 나눠 주며 재밌게 찍어보자고 당부했다.

그들의 평상복과 장미, 각자 다른 옷들의 색감이 복잡하여 당최 장미가 도드라져 보이질 않는다. 이럴 경우 사진장이들끼리 통하는 얘기로 ‘묻힌다’라고 한다. 뭔가 복잡한 배경이나 색들 때문에 주제가 될 얼굴이나 물건에 시선이 가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른바 장미가 옷들에 묻혀 돋보이지 않는 게다.

사진을 찍기는 하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 그들의 파격적인 첫 등장의 의미가 사진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다. 입으로는 ‘좋아요’소리를 계속 냈다. 그들을 독려하기 위함이다. 일종의 추임새다. 하지만 ‘좋아요’를 외칠수록 머릿속은 더없이 복잡해져 갔다. 사진 찍는 내내 해결책을 찾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급기야 상의 탈의를 제안했다. 해결 방안을 고민하다 못해 어떻게 되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툭 내던진 말이다. 그런데 이 친구들 정말 벗어도 되냐며 흔쾌히 상의를 벗어 던진다. 더구나 이 상황을 즐겼다.

벗으니 장미가 묻히는 건 해결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고민이 따른다. 가사도 원색적인데 상의 탈의한 모습이 원색적이란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지 않을까 해서다. 장미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흑백으로 변환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누드 사진 작품 중에 흑백이 유독 많은 이유와 같다.

마감을 한 후,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마마 두(Mama Do)’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국의 픽시 로트(21)가 같은 지면에 게재 되게 되었다.

두 사진 다 공교롭게 내가 찍었다. 이름값만으로 판단하면 당연히 픽시 로트가 메인이었다.

그런데 신문 지면의 메인이 장미여관 그 밑에 박스가 픽시 로트였다.

인디밴드 장미여관이 적어도 중앙일보 지면에선 세계적인 스타 픽시 로트를 누른 거다.
벗은 덕 본 게다.

신문에 게재 된 후, 문자 메시지가 왔다. 곧 앨범이 하나 나올 건데 신문에 게재된 사진을 사용하고 싶다 했다. 그러라 했다. 사진을 위해 옷까지 벗은 그들, 밥벌이도 만만치 않았던 음악을 껴안고 청춘을 다 바쳐 온 인디밴드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었다.

일일시트콤 ‘선녀가 필요해’ OST Part4 앨범의 표지에 실린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앨범이 나오고 한 후배가 전화가 왔다. 장미여관이 사진을 도용했다는 것이다.

도용이 아니라 제공이라 했다. 중앙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과 앨범 표지의 사진이 동일한 이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