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데스크에서] 거짓말의 대차대조표

바람아님 2015. 6. 29. 07:43

(출처-조선일보 2015.06.29  김성현 문화부 차장)


	김성현 문화부 차장
김성현 문화부 차장
얼마 전 프랑스어 시험을 봤다가 보기 좋게 낙방하고 말았다. 
영어를 제외하고 유럽의 어학 시험은 수준에 따라 대략 6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최종 단계만 남겨 놓고 있어서 욕심을 내다가 주말 이틀간 짬을 내서 응시했는데 그만 떨어진 것이다.

실은 시험을 치를 때부터 실패의 조짐이 보이긴 했다. 
작문은 3시간여에 이르는 넉넉한 시험 시간만 믿고 무턱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유치원생 수준의 어휘와 
구문을 남발하다가 종료 한 시간을 남기고서는 마무리에 허덕였다. 다음날의 인터뷰 시험도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취 내용은 그럭저럭 요약한 것 같은데 정작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어학 시험은 단계가 올라갈수록 질의응답과 토론에 가중치가 붙는다. 
급기야 면접관에게 '당신만의 의견이 없다'는 지적을 당한 뒤부터는 삐질삐질 땀까지 흘렸다. 
이틀 내내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몸져눕다시피 했다. 
그때 '어른 말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공부는 젊어서 하는 것이다.

불어(佛語) 시험 본다고 주변에 큰소리를 땅땅 쳤는데 정작 떨어졌다고 고백할 순간이 다가오니 민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합격점을 밑도는 초라한 점수를 보다가 현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그 간극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 허언(虛言)의 
욕망이라는 걸 절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세상에서 최고의 '나 전문가'는 나 자신 아닌가. 합격한 척, 시험 잘 본 척하기는 
어렵지 않다. '어차피 내가 고백하지 않는 한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악마가 귓속말로 속삭이는 듯했다.

물론 거짓말에도 경제학은 있다. 허언이라는 기회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클 때 자연스럽게 마음도 거짓말 쪽으로 
기운다. 반대로 거짓말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거나 폭로의 위험이 높다면 정직을 택하는 편이 낫다. 
우리는 '성선론자(性善論者)'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착한 것이 '남는 장사'이기에 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짓말의 종교학이나 윤리학이라면 다른 결론이 나겠지만 경제학은 선악이나 윤리를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못내 마음에 걸렸던 건 거짓말에 깃든 묘한 중독성이었다. 
한번 꾸며대기 시작하면 거짓말의 무한 반복과 자기 복제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말이라면 명문대 동시 입학은 왜 못하고, 위대한 문호(文豪)는 왜 못 되겠는가. 
천재 소녀든 인기 작가든 요즘엔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을 넘어 진실 자체가 실종되는 
'허언의 포스트모더니즘'과도 마주친다.

거짓말의 주판알을 한참 굴려본 끝에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아예 낙방 사실을 대놓고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취업이나 유학처럼 거짓말로 얻을 수 있는 직접적 이익이 없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마음의 복잡한 대차대조표에서 '쪽팔림'이라는 치명적 마이너스가 생겼지만 '홀가분함'이라는 플러스가 상쇄해주는 듯했다. 
모름지기 허언이라는 카드로 지은 집은 무너지기도 쉬운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