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7.31
김영희/국제문제 대기자
아베 담화 못지않게 큰 문제는 중국과 일본 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외교적 고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중 관계가 최상이라는 우리 외교라인 사람들의 환상, 박근혜 대통령이 올 들어 한·일 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 한·일 관계 개선의 전망도 밝다는 희망사항에 근거한 기대의 결과다. 외교당국자들은 국민들과, 아마도 대통령까지 오도해 온 것 같다. 후나바시에 의하면 9월 방미를 앞둔 중국의 시진핑은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중·일 관계 개선을 서두른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아베의 외교 책사 야치 쇼타로가 중국을 방문해 리커창 총리와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을 만나 관계 개선에 돌파구를 찾았다. 아베는 9월 초 중국을 방문하고, 내년 초 시진핑의 방일을 기다리는 야심적인 정상외교 일정을 갖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작은 섬들을 매립하여 땅을 넓히고 군사용으로 사용 가능한 활주로를 만들어 긴장이 고조되는 것 같지만 시진핑은 미국에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미국도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도 중·일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상대를 너무 감정적으로 대한다. 후나바시는 말했다. “한·일 관계는 너무 감정적이다. 일본이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일 관계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흐른 데는 두 나라 언론의 책임도 무겁다. 일본의 산케이신문 같은 경우는 한국 때리기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장사를 한다. 요미우리신문도 한국 문제라면 일단 선정적이다. 한국 언론은 어떤가. 아베 등장 이후 일본의 우경화를 너무 과장해서 보도한다. 일본 천황을 일왕이라고 쓴다. 아베가 안보 관련 11개의 법안을 중의원에서 통과시킨 것이 지난 17일. 18일부터 일본 전역에서 안보법안 반대시위가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된다. 전국의 편의점에는 어느 시인이 쓴 붉은 글씨의 ‘아베의 정치, 용서할 수 없다’는 전단이 깔려 있다. 여기 와서 인터뷰한 무라야마 전 총리나 소에야 교수 모두 일본의 의회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지만 일본 국민들이 우경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국의 드라마는 여전히 인기가 있고, 혐한 시위의 직격탄을 맞아 상권이 반 토막 났던 신주쿠의 한인타운 신오쿠보도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혐한 시위가 한풀 꺾인 것이다. 아베가 중국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한다고 비판하는 민족주의자들도 있지만 대세는 아니고 한국에 대해선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꺼져가는 불에 기름을 붓지 말자.
분명히 아베의 종전담화는 우리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종전처럼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관계개선은 요원해진다. 역대 총리들의 담화를 전반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면 받아들이고 안보 공조, 문화, 경제 같은 큰 분야에서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다. 빌리 브란트는 1969년 서독 총리에 취임하던 날 비스마르크의 말을 패러디하여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역사를 가까이 느끼는가?” 역사의 진행 방향으로 나라를 이끄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다. 그러자면 역사를 보는 눈이 중요하다. 도쿄에서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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