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5-8-3
여적/히로히토는 항복연설 하지 않았다
1945년 8월15일 정오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떨리는 목소리가 라디오 잡음을 타고 흘러나왔다. ‘대동아 전쟁종결에 관한 조서’였다. 800자 분량의 내용을 알아듣기 쉽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궁정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서’는 ‘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기 어려운 것을 견딘다.(堪へ難きヲ堪ヘ忍ヒ難キヲ忍ヒ)’는 구절만 줄기차게 인용됐다. ‘시운(時運)을 잘못 만나 어쩔 수 없이 전쟁을 끝내니 일본국민은 어떤 어려움도 견디자’는 것이었다.
히로히토 일왕은 이른바 종전조서에서 패전과 항복이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은채 자기 변명으로 일관했다. |
최근 일본 궁내청이 종전 70주년을 맞아 디지털로 복원한 일왕의 ‘육성방송’을 공개했다. 다시 들어도 기가 찬다. 패전이라는 말도, 항복이라는 말은 전혀 없다. 식민지 침략을 두고도 책임회피로만 일관했다. ‘제국(일본)의 자존과 동아의 안정을 간절하게 바라는 뜻에서 미·영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며, ‘다른 나라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한 행위도 짐(일왕)의 뜻도 아니었다’고 했다.
전쟁종결의 이유는 ‘적(미국)이 원자폭탄을 터뜨려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했기 때문’이라 했다. 연합군의 비인간적 행위에도 교전을 계속한다면 ‘일본의 멸망을 초래할 뿐 아니라 인류의 문명도 깨질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일왕 스스로 일본인의 구세주일 뿐 아니라 연합군의 살육에 반대하는 인류문명의 수호자이자 평화주의자임을 천명한 것이다. 물론 원자폭탄을 사용한 미국의 행태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하지만 7월26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한 포츠담 선언 직후의 히로히토 행보 역시 반인륜적이다.
히로히토는 일본 왕실이 대대로 간직해온 ‘3종의 신기(神器·조상신으로부터 받은 칼과 굽은 옥, 거울을 뜻함)’를 폭격에서 보호할 방법을 찾느라 골몰한다. 국민의 안녕은 안중에도 없이 ‘3종 신기’ 타령으로 10일 이상 소비한 것이다. 그 결과 히로시마(8월6일)과 나가사기(9일)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33만명이 희생됐다.
히로히토는 또 ‘제국신민으로서 전장에서 죽은 자와 직무상 순직한 자를 생각하면 오장육부가 찢어진다’고 언급했다. 이 또한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히로히토는 바로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모셔질 영령’의 자격을 말한 것이다. 일왕의 방송은 절대 ‘항복선언’이나 ‘항복연설’로 기록해서는 안될 것 같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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