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5-8-3
화려한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많다. 이들은 부모 덕에 나름 승승장구한다. 비싼 학교에 다니며 좋은 교육을 받는다. 국내가 어려우면 해외라도 나간다. 잘 정비된 인맥으로 취업도 용이하며, 놀아도 가진 재산으로 풍족히 산다. 명문외고, 명문대학, 명품직장에 상류층이 많이 다니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사회적 지위는 혼맥ㆍ학맥ㆍ금맥의 동심원을 통해 겹겹이 안정화된다. 이들의 최정점은 바로 재벌 2, 3세다. 후대로 갈수록 창립자의 전투력은 발견하기 어렵다. 한줌 주식으로 거대한 기업집단을 전횡 지배하며, 서민과의 공감능력은 결여한 채, 때때로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골육상쟁과 땅콩회항을 감행하기도 한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그들의 승승장구를 부러움과 자괴감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세계는 전세 값은 뛰고 노동은 불안하고 복지는 열악한 곳일 뿐이다. 중산층 붕괴는 현실이며 청년실업 등과 연계되면 부모와 자식 모두 급속히 추락한다. 가난의 대물림은 중세 신분제 사회에서가 아니라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현실화되어 간다.
과거 미국 시카고 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자유지상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흑인이 못사는 이유는 그들이 젊었을 때 공부가 아니라 노는 것을 선택한 '자유'의 결과라고. 그때 한 흑인 학생이 손을 들어 말했다. "프리드먼 교수님, 저에게 부모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나요?"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宇澤弘文)의 증언이다. 누구나 부모를 선택할 자유는 없다. 가난한 학생들이 고액의 명품강의를 들을 '자유'도, 영어연수를 떠날 '자유'도 없다. 출세를 위해 부모의 인맥을 활용할 '자유'도, 내 집 마련과 부모봉양에 휘어 재테크에 전념할 '자유'도 없다. 출발점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 그래서 출발점의 차이는 대를 이어 계승되는 것이다.
혹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유'는 최대한 보장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유재산'은 인간 본연의 권리라고도 주장한다. 사유재산과 자유에 입각한 영리활동이 시장을 통해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야기에 존 스튜어트 밀, 존 로크, 애덤 스미스가 인용되기도 한다. 대체 좋은 부모를 만나 좋은 교육을 받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남에게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밀, 로크, 스미스가 강조했던 것은 바로 '특권사회'로부터의 탈출이었다. 부당한 권력으로부터의 탈출(밀), 왕권신수설로부터의 탈출(로크), 특권상인으로부터의 탈출(스미스) 등 그들은 출발점이 평등한 개인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자유도 사유재산도 충분히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출발점을 공평하게 하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국가에서 이 문제를 푸는 방식은 바로 '복지국가'였다. 부자의 세금과 가난한 자의 복지가 교환된다. 그것이 사회를 안정시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신분제사회가 고착화되어 간다. 개천에서 용 나오기 어렵다. 복지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조세부담율은 거의 최하위며, 정부가 돈이 없으니 당연히 개개인의 출발점 격차를 시정할 방법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다시 개혁해야 한다고 한다. 이번엔 노동개혁이다. 자본분배율이 전 세계에서 거의 최고로 높은 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만이 개혁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 당연히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흥겹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확신도 안 선다. 감동 없는 메마른 구호의 메아리로만 들리는 것이다. 개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감동이다. 인간은 채찍과 당근에 의한 것보다는 감동과 윤리적 결단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개혁이전에 먼저 복지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 출발점이 같은 평등 사회를 위한 계획을 발표하는 것, 이것이 선결과제가 아닐까 한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사회적 지위는 혼맥ㆍ학맥ㆍ금맥의 동심원을 통해 겹겹이 안정화된다. 이들의 최정점은 바로 재벌 2, 3세다. 후대로 갈수록 창립자의 전투력은 발견하기 어렵다. 한줌 주식으로 거대한 기업집단을 전횡 지배하며, 서민과의 공감능력은 결여한 채, 때때로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골육상쟁과 땅콩회항을 감행하기도 한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그들의 승승장구를 부러움과 자괴감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세계는 전세 값은 뛰고 노동은 불안하고 복지는 열악한 곳일 뿐이다. 중산층 붕괴는 현실이며 청년실업 등과 연계되면 부모와 자식 모두 급속히 추락한다. 가난의 대물림은 중세 신분제 사회에서가 아니라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현실화되어 간다.
과거 미국 시카고 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자유지상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흑인이 못사는 이유는 그들이 젊었을 때 공부가 아니라 노는 것을 선택한 '자유'의 결과라고. 그때 한 흑인 학생이 손을 들어 말했다. "프리드먼 교수님, 저에게 부모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나요?"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宇澤弘文)의 증언이다. 누구나 부모를 선택할 자유는 없다. 가난한 학생들이 고액의 명품강의를 들을 '자유'도, 영어연수를 떠날 '자유'도 없다. 출세를 위해 부모의 인맥을 활용할 '자유'도, 내 집 마련과 부모봉양에 휘어 재테크에 전념할 '자유'도 없다. 출발점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 그래서 출발점의 차이는 대를 이어 계승되는 것이다.
혹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유'는 최대한 보장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유재산'은 인간 본연의 권리라고도 주장한다. 사유재산과 자유에 입각한 영리활동이 시장을 통해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야기에 존 스튜어트 밀, 존 로크, 애덤 스미스가 인용되기도 한다. 대체 좋은 부모를 만나 좋은 교육을 받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남에게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밀, 로크, 스미스가 강조했던 것은 바로 '특권사회'로부터의 탈출이었다. 부당한 권력으로부터의 탈출(밀), 왕권신수설로부터의 탈출(로크), 특권상인으로부터의 탈출(스미스) 등 그들은 출발점이 평등한 개인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자유도 사유재산도 충분히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출발점을 공평하게 하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국가에서 이 문제를 푸는 방식은 바로 '복지국가'였다. 부자의 세금과 가난한 자의 복지가 교환된다. 그것이 사회를 안정시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신분제사회가 고착화되어 간다. 개천에서 용 나오기 어렵다. 복지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조세부담율은 거의 최하위며, 정부가 돈이 없으니 당연히 개개인의 출발점 격차를 시정할 방법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다시 개혁해야 한다고 한다. 이번엔 노동개혁이다. 자본분배율이 전 세계에서 거의 최고로 높은 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만이 개혁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 당연히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흥겹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확신도 안 선다. 감동 없는 메마른 구호의 메아리로만 들리는 것이다. 개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감동이다. 인간은 채찍과 당근에 의한 것보다는 감동과 윤리적 결단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개혁이전에 먼저 복지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 출발점이 같은 평등 사회를 위한 계획을 발표하는 것, 이것이 선결과제가 아닐까 한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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